지난해 겨울, 여자 후배 하나가 당시 '버닝'하고 있는 남자 친구에 대해 침을 튀며 자랑한 적이 있었다. 보다보다 이 남자처럼 매너 좋고 자상한 남자는 첨 본다나 어쨌다나…. 처음 만나던 그날부터 집 앞까지 바래다 주는 건 기본이요, 한번은 수억이 넘는 인터넷 맞고 머니를 모두 탕진하고 평민의 신분이 되어 괴로워하자 그녀의 아이디로 접속 한 후 며칠 밤을 새워 그녀를 맞고의 여신으로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집 앞에서 '화장실 좀 쓰면 안 될까?' 하더란다.

올 것이 왔구나! 혼자 사는 여자 집에? 차라리 뻔~하더라도 '차 한 잔만 하자'는 핑계를 대지 싶었지만 이 기회에 인간 됨됨이나 보자 싶어서 승낙을 했단다. 그런데 이 남자가 정말 화장실에 들어가 볼일만 보고는 나이스하게 '그럼 편히…'하고 가더란다. 그게 뭐 대단한 일이냐?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 정도의 매너는 있다 했더니 그게 아니란다.

화장실에 들어간 후 이내 세면대 꼭지를 틀어 놓았는지 물 쏟아지는 소리가 들리더란다. 원룸과 붙어 있는 화장실이라 혹여 민망한 소리가 새어 나갈까 세면대 물을 틀어놓는 그의 섬세한 매너에 진심으로 감동했다는 것이다. 말이 된다 싶으면서도 별 드러운 감동 다 봤네 싶더라.

그리고 물 틀어 놓고 볼일 보는 섬세한 매너를 가진 남자와 그것에 감동한 여자는 지난달 결혼을 했다. 후배의 말에 의하면 남자는 아직도 세면대 꼭지를 틀어 놓고 볼일을 본단다. 심지어 가끔은 샤워기까지 틀어 놓고 볼일을 본다고 했다. 부부 사이에도 예의가 있다지만 그건 좀 오버 아니냐는 말에 그녀는 한숨을 내쉰다. 그렇지 않아도 유독 그 부분에 있어서 그거 너무 조심스러워하는 것 같아서 이제는 결혼도 했으니까 꼭 그렇게 화장실 안 꼭지란 꼭지는 다 틀어 놓을 필요 까지는 없다고 했더니 섬세한 매너의 그가 생뚱맞은 표정으로 대답하더란다.

"뭔 소리야? 난 어릴 때부터 물소릴 들어야 볼일을 봐!" 샤워기까지 틀어야 했던 건 변비가 심했던 거라나…. 다소 유난스럽긴 하지만 그 남자의 버릇은 당연히 무죄다. 죄가 있다면 생리현상에까지 아름다운 로맨스를 갖다 붙인 그녀의 착각일 것이다. 그녀의 인터넷 맞고 머니를 위해 세웠던 수많은 불면의 밤에 대한 진실도 조만간 밝혀질 듯싶다. 수많은 맞고인(人)들께서도 아시다시피 그게 어디 사랑만으로, 마음만으로 되는 일이던가.

만일 두 사람이 결혼까지 이어지지 않고 중간에 헤어졌다면 그는 그녀에게 물 틀어 놓고 볼일 보는 매너 있는 남자로 영원히 기억됐을 것이다.

로맨스와 현실은 정말 이렇게도 얄팍했다.

(신정구 방송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