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萬海)! 그 이름 그대로, 이 축제는 예술 분야는 물론, 학술 연구 등 인간 문화의 전(全)장르를 주제로 함은 물론 공간과 세대, 계층과 군민(軍民) 그리고 국경마저 넘나들며 자유롭게 수행되는 여법(如法)한 중생의 잔치로서 더욱 자랑스럽습니다."

만해 한용운(1879~1944) 선생의 얼을 기리기 위한 제8회 만해축전(만해사상실천선양회·강원도·인제군·조선일보사 주최)이 11~13일 강원도 인제군 백담사 만해마을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만해사상실천선양회 총재인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의 입재 법어는 올해로 10회째를 맞은 만해대상과 8회째인 만해축전이 갖는 의미를 잘 보여주었다. 만해대상은 노벨평화상을 받은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 달라이 라마와 노벨문학상 수상자 월레 소잉카 시인 등 세계적 인물들을 수상자로 배출했다. 만해의 민족사랑, 나라사랑, 평화사랑, 문화사랑 정신을 바탕으로 한 만해대상이 한국민뿐 아니라 세계인들 사이에 평화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11일 시인학교(교장 신경림 시인) 입교식으로 시작된 올해 만해축전은 현대시조 100년을 기념하는 시조와 시를 적은 '시(詩) 플래카드'와 서예전·백일장 등을 알리는 현수막과 포스터가 만해마을 전체를 뒤덮은 가운데 축제마당으로 펼쳐졌다. 축전 기간 동안 만해마을의 '문인의 집' '만해학교' '서원보전(誓願寶殿)' '만해문학박물관'과 '님의 침묵 산책로' 등 곳곳에서는 문예전시행사와 학술대회, 전시회가 연이어 열려 만해의 정신을 기렸다. 올해는 시조시인 정완영의 '분이네 살구나무' 시비(詩碑)가 세워져 만해마을에 또 하나의 명소가 추가됐다.

12일 오후 열린 만해대상 시상식은 만해의 삶과 사상을 가슴에 되새기는 시간이었다. 포교부문 수상자인 남바린 엥흐바야르 몽골 대통령은 부인 촐롱 오논 여사가 전한 수상소감을 통해 "평화는 민주·정의·평등·자유·친절·관용이 혼연일체가 돼야 이뤄질 수 있다"며 "선의(善意)가 지상에 가득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평화 부문 수상자 김지하 시인은 34년 전 유신헌법이 공포된 다음날 밤 백담사 계곡 산장에서 보낸 하룻밤을 회고했다. 그는 "그날 밤 반대편 방에선 미국 청년이 서툰 솜씨로 퉁소를 불고 있었다"며 "지금 생각하면 그 청년의 퉁소 소리는, 고통과 좌절에 빠진 인류 전체로 만해사상이 퍼져가는 의미심장한 메타포(은유)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승려이자 독립운동가… 불교개혁·민중계몽 앞장서
만해 한용운 선생은

만해 한용운 선생은 승려이자 시인, 독립운동가, 불교사상가로 한 평생을 바쳤다. 1905년 백담사에서 출가한 만해는 일제의 조선 강제병탄 이후 만주와 시베리아 등지를 유랑하다 귀국했다.

그는 1913년에는 '조선불교유신론'을 발표하며 불교개혁에, 1918년에는 월간지 '유심'을 발간하면서 민중계몽에 앞장섰다. 1919년 3·1만세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명으로 일제에 체포돼 3년간 옥고를 치렀다. 이후 많은 인사들이 훼절했지만 만해는 지조를 지켰다. 그는 1926년엔 시집 '님의 침묵'을 내놓았으며 1927년에는 조선일보가 주도한 신간회운동에 참여, 경성지회장으로 선출되는 등 중추적인 역할을 맡았다. 만해는 이런 민족운동의 공로로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받았다.

만해는 1930년대 조선일보에 장편 '흑풍' '박명'을 연재했으며, 1940년 '삼국지'를 연재하던 중 조선일보 폐간을 맞았다. 그는 폐간 소식을 듣고 "붓이 꺾이어 모든 일 끝나니"로 시작되는 '신문이 폐간되다[新聞廢刊]'는 시를 남겼다. 만해의 경제적 후견인 역할을 하던 당시 조선일보 사주 계초 방응모 선생은 1933년 만해의 성북동 거처 '심우장' 건립을 주도적으로 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