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후 조관행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구속영장 실질 심사를 받기 위해 검찰 수사관들과 함께 서울중앙지법에 도착해 법정으로 가고 있다.

8일 오후 1시50분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4층 복도. 법정으로 향하던 조관행(趙寬行·50)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평소에 낯이 익은 취재진과 마주치자 당황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카메라를 똑바로 보지 못하고 자꾸 고개를 숙인 채 걸었다. 몰려든 취재진의 몸싸움 때문에 카메라에 머리와 이마를 두 번이나 부딪힌 뒤 한참 동안 한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취재진이 바닥에 떨어진 검은 뿔테 안경을 주어 건네자 치욕스러움과 곤혹스러움이 뒤섞인 듯한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는 "국민과 법원에 사죄드린다"며 입을 연 뒤 결백을 주장했다. 그렇지만 그의 목소리는 맥이 빠진 듯 기어들어 갔다. "이 어마어마한 범죄를 내가 어떻게 저지릅니까. 허구가 아니라면 이런 사건을 만들 수 없습니다." 조씨의 목소리가 순간 떨렸다.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시절 언론 담당 사건을 맡았던 조씨는 "기자 여러분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않습니까. 흥미 위주로 이 사건을 보도하지 말아주십시오"라고도 했다.

법조 브로커 김홍수씨로부터 민·형사 소송사건 처리와 관련한 알선 명목으로 1억3000만원대의 금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조씨. 차관급 고법 부장판사 출신으론 처음으로 개인 비리 혐의를 받고 구속영장이 청구된 조씨는 어두운 표정으로 서울중앙지법 법정에 섰다. 법대(法臺)가 아닌 피고인석이었다. 지난주까지 고위 법관 신분이었지만 이날은 후배 법관에게 구속영장 실질 심사를 받는 피의자였다.

실질 심사가 시작되자 그의 태도는 공세적으로 바뀌었다. '밀리면 구속'인 절박한 상황에 몰린 그는 민사 소송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받던 고위 법관 출신답게 변호인의 도움 없이 자신이 직접 검찰과 공방을 벌였다. 조씨는 청탁 대가로 돈을 받지 않았느냐고 추궁하는 검찰 신문에 "6하원칙에 따라 물어야지 내가 '기억이 안 난다'라고밖에 답할 수 없도록 (막연하게) 묻는 게 어디 있느냐"고 따졌다. 실질 심사 내내 검찰 신문에 "전혀 사실이 아니다", "구체적으로 얘기해 달라"며 검찰을 압박하기도 했다. 6시간40여분간의 실질심사가 끝난 뒤 지친 표정으로 법정을 나선 조씨는 여전히 "혐의를 인정하지 않는다. 법원이 정당한 판단을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1980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조씨는 사법연수원을 상위권 성적으로 수료하고, 서울민사지법 판사로 법관생활을 시작한 '엘리트 판사'였다. 서울형사지법과 청주지법, 서울지법 남부지원을 거쳐 1992년에는 미국 예일대에서 1년간 연수했다. 이후 서울고법 판사로 임용됐다가 실력파 법관에게 돌아간다는 대법원 재판연구관에 발탁됐다.

그 이후에도 그는 승승장구했다. 사법연수원 교수, 서울지법 부장판사를 거쳐 2005년 2월에 대전고법 수석부장으로 '법관의 꽃'이라는 고법 부장판사(차관급) 대열에 올랐다. 그리고 올 2월 서울고법 부장으로 옮겼다. 25년 법관생활 중 순환 근무를 위해 지방에 내려간 4년여를 제외하곤 줄곧 서울에서 근무할 정도로 그는 '잘 나가는' 판사였다. '사법시험에 응시한 첫 해의 불합격이 그의 인생에서 실패의 전부였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는 화려한 경력 때문에 법원 내에서 가끔 질투와 시기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권위적'이라는 평도 있었다. 검찰의 내사(內査)가 시작된 뒤 발벗고 나서 돕는 동료 판사들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조씨는 검찰 수사가 시작된 뒤 한 달여 동안 법관 신분을 고수하다 검찰의 사전 구속영장 청구 방침이 선 이달 4일에야 사표를 냈다. 대법원측은 "법복을 입고 재판을 받을 셈이냐"는 차가운 입장이었다고 한다. 그의 사표가 대법원에서 수리되는 데 10여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조씨와 함께 김홍수씨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김영광(金榮光) 전 검사는 실질 심사에서 혐의를 시인했고, 민오기(閔伍基) 총경은 검찰 조사 때와 달리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