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럭 개조해 만든 버스 5일 수도 아바나의 한 정류장에서 시민들이 트럭을 개조해 만든 버스에 오르기 위해 무리를 지어 서 있다.

5일 낮 수도 아바나의 '라 보데기타 델 메디오' 식당. '노인과 바다'를 쓴 미국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즐겨 찾았다는 곳이다. 4인조 악단이 연주하는 '관타나멜라'가 더없이 정겹다. 이곳 1~2층을 메운 이들은 모두 외국 관광객들뿐. 내국인 손님은 찾기 어렵다. 평균 월급이 300페소(12달러)에 불과한 이곳 서민들에게 이런 식당은 그림의 떡이다.

쿠바의 외관은 화려하다. 태양빛 아래 갈색 남녀가 라이브 연주에 맞춰 살사 댄스를 추는 모습은 이방인에게 매혹의 땅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한꺼풀 벗겨보면, 공산혁명 이후 47년간 '우리 식 사회주의'가 초래한 궁핍과 부자유로 쿠바는 얼룩져 있다.

지난해 쿠바의 경제성장률(정부발표)은 12%. 하지만 시중에서는 '앞에 마이너스를 빼먹은 것 아니냐"는 농담이 나돈다. 도시 어디를 가나 건물 외부는 칠이 벗겨져 있고, 허물어진 데는 보수를 안 한 지 오래다.

야경은 어떨까 싶어 밤에 33층 '라 토레' 바를 찾았다. 여기도 칵테일 '쿠바 리브르(자유)'를 즐기는 이들은 이방인이다. 1990년대 초 소련의 원조가 끊기면서 시작된 에너지난은 아직 진행 중이다. 유일한 컬러 불빛은 미국 이익대표부 건물의 전광판. '민주 독립 쿠바를 건설하기 위해 쿠바인들은 미국의 조건 없는 절대적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스페인어 선전문을 내보내고 있다.

'평등의 나라'라지만 빈부차는 여전하다. 그에 따라 생필품 시장도 삼분돼 있다. 서부 외곽 서민들이 사는 랄리사 마을의 국영 농산물시장은 협동농장의 생산품을 내다파는 곳이다. 값은 싸지만 신선도가 떨어지고 품목도 한정돼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 차로 5분 떨어진 농산물 자유시장은 딴판이다. 개인이 생산자로부터 물건을 직접 받아 파는 곳이다. 가격은 국영시장보다 20%쯤 비싸지만 훨씬 싱싱하고 종류도 많다. 사람이 붐비는 이유다. 주변엔 잡화상들이 부엌칼부터 순간접착제·면도기 등 국적불명의 공산품들로 서민의 발길을 붙잡는다.

여기서 조금 떨어진 시보네이 지역에는 또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쇼핑 매장에는 도브 비누부터 네슬레 커피 등 수입품들이 즐비하다. 이곳 상품은 페소가 아닌, 달러가격에 해당하는 '태환패소'(27페소 상당)로 가격이 매겨져 있다. 잘 차려 입은 여자들이 에어컨 바람 속에 40~50달러짜리 구두를 보고 있다. 웬만한 가정 한 달 생활비가 넘는 가격이다. 샤넬 향수, 발렌타인 양주까지 진열장을 차지했고, LG 카스테레오가 200달러 가격에 놓여 있다.

서민들은 쌀·베이컨·설탕 같은 식료품을 싼값에 살 수 있지만, 박봉으로 전기·전화료 등을 내고 나면 남는게 없다. 젊은이들의 최대 관심사는 의사·교수 같은 전문직이 아니라, 외국회사 취직이다. 외화를 노린 가짜 시가 제조·판매나 신세대 매춘부인 '히네테라'가 느는 등 지하경제도 커지는 추세다. 미국행은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이미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만 쿠바인이 80만을 헤아린다.

반백년 고립의 길을 걸어온 이곳에도 변화의 요구는 커지고 있다. 사업가인 J(50)씨는 "골수 공산주의자나 급진 시장개혁론자들도 있지만 주변의 다수는 중국이나 월남식의 점진적인 개혁을 선호하는 편"이라면서 "후계자 라울도 그런 쪽으로 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아바나=전병근 특파원 bkjeo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