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즈음부터 밤에 잠이 오지 않는 날들이 가끔 있다. 불규칙한 생활습관이 관성이 돼 찾아온 당연한 결과다. 침대에서 이리저리 뒤척일 때, 생각들은 우주여행을 한다. 나의 의지는 나의 생각을 나무란다. "이제 자야 해. 내일 또 팬더가 돼서 촬영장에 나타나려고?" 무언가에 생각이 꽂히기 시작하면 은하계까지 둘러보고야 마는 내 지독한 상상력이 이럴 땐 정말 밉다.

그러다 불쑥 신선한 생각 하나가 내 머리를 노크한다. "잠이 안 오면 올 때까지 다른 일을 해보지 그러니?" 거실로 나온다. 어스름한 새벽빛이 좋다. 빌라1층이라 운 좋게 딸려온 내 보물 1호 손바닥 정원이 눈에 들어온다. 시달린 머리통에게 공기 한 모금 줄까 싶어 이중창을 열어젖히고 정원으로 나간다. 큰비로 아직 풀 죽어 있는 잔디에서 평온한 냄새가 난다. 특별주문해서 심어놓고도 이름을 까먹은 분홍색 야생화와 빨간 봉숭아 꽃도 오롯이 피어 있다.

이때 눈앞에 믿어지지 않는 일이 벌어진다. 통나무 울타리의 벌어진 틈 사이로 무언가가 들어왔다. 고양이다. 너무나 예쁜 갈색 얼룩 새끼고양이. 도둑고양이 새끼가 이렇게 예쁜 줄은 절대 몰랐다. 그 아이는 나랑 3초 정도 눈을 맞추더니 쏜살같이 울타리 너머로 날아가 버린다. 장마 통에 제대로 먹지 못했는지 너무 야윈 것 같다.

냉장고 문을 열어 참치 캔 한 통을 꺼내 다시 정원으로 나온다. 그 아이가 드나드는 틈 사이 멀지 않게 캔을 가만히 놓아둔다. 그리고 크게 심호흡 한 번. 공기가 참 맛있네…. 다시 침대 속을 파고 든다. 잠이 쏟아진다. 다음날, 아침이라고 하기엔 부끄러운 시간에 난 눈을 뜬다. 손바닥 정원이 궁금해진다. 이중창을 연다. 내 입가엔 미소가 생긴다. 참치 캔이 뒤집힌 채 작은 감나무 옆에 있다. 이제 난 불면의 밤을 지새우는 비결을 배웠다. 한낮의 뜨거운 소음들이 물러가고 소소한 아름다움들이 나타날 때 그들과 사귀어 보는 것이다.

(추상미 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