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입관이 있었다. 지극히 미국적인 소재 아닐까. 자동차를 의인화한 애니메이션이라니. 그러나 베일을 벗은 '카'(20일 개봉)는 그런 우려를 날렵하게 벗어난다. 픽사 스튜디오의 일곱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은 레이싱의 쾌감과 휴먼 드라마의 감동을 적절하게 빚어낸, 매력적인 가족 패키지 상품이다. 작품마다 진보를 거듭하고 있는 기술력은 이제 단순한 테크닉이 아니라 그 자체를 주연 배우로 호명해야 한다는 게 솔직한 심정. 권선징악과 가족주의를 강조한 드라마가 너무 작위적이라는 아쉬움은 있지만, 이미 그 가치를 고유 브랜드로 삼고 있는 디즈니 애니메이션(픽사는 지난 5월 디즈니와 합병했다)에서 작가주의를 찾아내려는 시도만큼 우스꽝스러운 일도 없을 것이다.

우승 트로피를 인생 최고의 가치로 믿는 신인 레이스 카 라이트닝 매퀸(목소리 오언 윌슨)은 최종 결선을 위해 LA로 달려가던 중 길을 잃고 사고까지 당한다. 다음 날 정신을 차려보니 라디에이터 스프링스. 외곽으로 새 고속도로가 난 뒤 퇴락해 버린 시골 마을이다. 자신이 엉망으로 만들어버린 마을 진입로를 복구하면서, 매퀸은 대도시의 경쟁사회에서 일찌감치 부정했던(혹은 부정하고 싶었던) 삶의 의미를 하나 둘 깨닫기 시작한다. 우승컵이라는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달리는 과정 자체라는 것을, 축하해 줄 가족이나 친구가 없다면 어떤 성취도 쓸쓸하다는 사실을, 내가 잘나서 거둔 성취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도움 덕이었다는 것을.

'토이 스토리'(장난감)와 '벅스 라이프'(벌레) '니모를 찾아서'(물고기)가 그랬던 것처럼, '카'의 대사와 배경들은 당연히 자동차의 시선으로 발언하고 묘사된다. 자동차 부품을 따온 마을이나 건물 이름(카뷰레터 카운티, 라디에이터 스프링스, 타이어 휠 모텔)은 물론이고, "캐딜락처럼 잽싸게 날아 비머(BMW의 애칭)처럼 쏘는 거죠" "지금은 놀기 위해 드라이브를 하지만, 예전에는 드라이브를 하면서 놀았거든" 등 재치있는 대사들도 자주 눈에 띈다. 유리면 유리, 금속이면 금속 등 재질 자체의 질감을 강조한 작법과 헤드라이트가 아니라 앞 창에 눈을 그려 넣고 앙증맞게 윙크하는 주인공들은 리얼리즘과 엔터테인먼트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독특한 매력을 뿜어낸다. 최종 결승 레이스에서 보여주는 다양한 각도의 앵글과 속도감은 실사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애니메이션 만의 매력이다.

과거 레이싱계의 전설이었던 원로 재판관 닥 허드슨(1951년식 허드슨 호넷·폴 뉴먼), 페라리 한 번 몰아보는 게 평생 소원인 타이어 가게 주인(1959년식 피아트 500·토니 샬하우브), 한 때 잘나가던 변호사였지만 세계관을 바꿔 느림의 미학을 만끽하는 샐리(날렵한 2002년식 포르셰·보니 헌트)처럼 실제 자동차와 목소리 배우들을 비교하며 보는 재미는 덤이다. 평소 "내 몸의 혈관 한쪽엔 디즈니의 피가, 다른 한쪽엔 자동차 오일이 흐르고 있다"고 강조하던 존 라세터 감독은 그 고백이 단순히 과장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카'로 입증하고 있다. '토이 스토리' '토이 스토리2' '벅스라이프'를 연출한 뒤 픽사 부사장으로 현장을 떠났다가, 7년 만에 다시 돌아온 그가 반가운 이유다.

픽사의 경쟁상대는 대부분 픽사다. '인크레더블'이나 '니모를 찾아서' 등 선배들의 매력을 앞지를지는 의문이지만, 올 들어 개봉했던 수많은 애니메이션보다 '카'가 한두 걸음 앞서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란 힘들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