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교 부근의 무너진 제방을 통해 안양천 물이 범람한 서울 영등포구 양평2동 일대. 16일 이 일대 7800여 가구 주민 2만여명에게 긴급 대피령이 내려졌다.

16일 중부지방에 내린 '물폭탄'에 서울 영등포구 양평2동은 수상(水上)도시가 됐다. 지하철 9호선 공사장과 맞닿은 양평교 아래의 안양천 둑이 터지면서 물이 밀려들어왔기 때문이다. 어처구니 없게도 지하철 터널을 만들기 위해 둑을 허물어 낸 뒤 복원하는 과정에서 공사가 부실했기 때문이다.

이날 둑 붕괴로 양평2동의 7800가구, 2만명에게 긴급 대피령이 내려졌다. 700여 가구는 침수됐다. 이재민은 당산초교 등 5곳으로 분산됐다. 서울에서 물난리로 대피령이 내린 것은 5년 만의 일이다. 시가지의 수해 침수는 1998년 이후 8년 만이다.

서울 양평교 부근의 둑이 무너지면서 안양천이 범람해 당산초등학교로 긴급 대피한 양평2동 주민들이 16일 밤 학교 바닥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다.

◆둑 허문 뒤 부실했던 복원이 원인

둑이 터진 것을 발견한 시간은 오전 5시30분. 순찰을 돌던 인부가 발견했다. 불어난 물이 둑의 연약한 틈을 파고든 것이다. 시공사인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두 달 전 이 둑을 잘라냈다.지하철 터널용 '박스'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 뒤 복원 공사가 엉터리였고, 결국 이 날 붕괴로 이어진 것이다. 감독 책임을 가진 서울시 지하철건설본부 역시 책임을 피할 순 없다. 그럼에도 시공사측은 "비가 오기 전에 홍수에 대비해 제방을 수 차례 점검했다"고 주장했다.

사후 대응도 부실했다는 지적이다. 시공사는 초기 2시간 가량 자체적으로 둑막이 작업을 했다. 컨테이너 2개와 덤프트럭 100대 분량의 돌과 흙더미를 부었지만 모두 떠내려 갔다. 9시쯤 덤프트럭 160대와 굴착기·크레인 등 20여 대가 동원되면서야 본격 물막이가 시작됐다.

인근 한신아파트에 사는 권순만(45)씨는 "7시에 나가봤을 때는 터진 부분이 1~2m에 불과했다"며 "처음부터 중장비를 제대로 동원했더라면 일찌감치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오전 10시30분 서울종합방재센터에 전화를 걸어 양평동 문제를 물었지만 대답은 "아직 보고가 오지 않았다. 당신이 잘못 들은 것 아닌가"였다.

◆발목까지 물 차니 대피령

대피령이 떨어진 것은 오전 10시. 둑이 터진 곳 주변으로 반경 50m안 주민이 대상이었다. 이후 오전 11시40분에 500여 가구, 오후 12시40분에는 700여 가구가 추가됐다. 오후 2시40분에는 양평2동 전역에 대피령을 내렸다. 범람한 물은 9호선 양천~당산역 구간 터널을 가득 채운 뒤 오후 12시40분부터 시가지를 메우기 시작했다.

대피령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인근 동보아파트 문정현(여·38)씨는 "TV를 보다가 대피령 소리에 내려오니 발목까지 물이 찬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지충민(49)씨는 "비 좀 왔다고 둑이 터지는 도시가 어떻게 '국제도시'냐"고 비꼬았다.

오후 5시쯤에는 양평교 부근 공장지대로도 물이 차기 시작했다. 종업원들은 비싼 기계들을 보호하려고 흙주머니를 쌓아올리면서 안간힘을 썼지만 역부족이었다. 물은 허리까지 찼고, 기계들은 물에 잠겼다.

주민 대피가 늦어지자 오후 5시 경찰력이 투입돼 침수지역 아파트와 주택 문을 일일이 두드렸다. 이선희(78)씨는 "이 동네에 60년을 살았는데 이런 난리는 처음"이라며 "지하철 건설회사와 서울시가 보상은 제대로 해줄지 모르겠다"고 했다.

물막이 공사는 오후 8시20분에 끝났다. 둑이 터진 것을 발견한 지 15시간 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