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말이란 길게 할수록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말해야 될 때가 아닌데 말을 하고 있을 때라면 더 그렇다.

―수비대를 불러들이는 일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누가 뭐라 합니까? 이제 안정이 되었으니 돌아갔느냐 묻는 것뿐입니다.

수비대가 제물포로 다시 돌아간 것을 모를 리 없는 왕비였다. 콜랭은 몇 마디 더 하려다가 말을 접는 대신 진땀을 닦아내며 허리를 정중하게 숙였다. 오늘은 연회자리인 데다 세브르 도자기를 왕에게 보이려고 하는 참이었다. 불미스런 얘기는 삼가야 하는 때라고 콜랭은 스스로 다독였다.

―걱정스러운 일이었소. 봉합이 되었으니 다행이오.

왕은 여전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폐를 끼쳐 송구하옵니다.

―유언비어 때문이었소.

콜랭은 교섭통상사무아문 독판 조병식에게 프랑스의 조선주교 블랑이 조선의 아이들의 피를 먹기 위해 고아원을 차렸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린 김호림을 찾아달라고 부탁했었다. 블랑에 대한 유언비어를 잠재우려면 그 말을 퍼뜨린 사람을 찾아내 어디서 그 소리를 들었는지 알아내야 된다는 판단에서였다. 조병식은 콜랭의 청을 왕에게 보고했고 왕은 김호림을 찾아내라는 지시를 한성부에 내렸다. 교서대로라면 유언비어의 주범으로 확인되는 순간 김호림은 참형에 처해질 운명이었다. 참형은 과하다고 생각된 콜랭은 그가 유언비어를 퍼뜨린 사람으로 밝혀져도 추방형을 받게 해달라고 독판에게 특별히 부탁까지 해놓았다. 그러나 콜랭은 절에서 붙잡힌 김호림이 심문을 받지도 않고 조선의 특이한 방식으로 처형을 당했다는 소식을 뒤늦게야 전해 들었다. 붙잡힌 김호림은 땅 위에 눕혀졌고 얼굴에 물 먹인 한지가 덮어씌워졌다고 했다. 젖은 한지가 김호림의 얼굴에 들러붙어 코와 입을 막아 질식시켰다고 했다.

독판은 김호림을 찾아냈다는 것도 그를 처형했다는 것도 콜랭에게 알리지 않았다. 상황이 다 끝난 다음에야 전해 들었다. 절에서 붙잡힌 김호림을 심문도 없이 바로 참형에 처했다는 얘길 듣자 외국인들이 조선의 아이들을 괴롭히고 있다는 유언비어의 출처가 청국 주재관임을 콜랭은 확신했다. 김호림을 고문했을 때 터져 나올 진실은 청나라 주재관을 위기에 빠트릴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에 연루된 수많은 조선 고관들도 곤란한 상황에 처할 판이라 김호림의 입을 아예 막았다고 콜랭은 판단했다. 결국 김호림도 희생당한 것이다. 콜랭은 악몽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처럼 밝은 목소리로 왕에게 고했다.

―전하. 제 조선 부임과 함께 프랑스 정부에서 보내온 세브르 도자기가 이제야 도착하였습니다.

―법국이 예술품 생산에 매우 뛰어나다고 중전이 전하더이다.

왕이 왕비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잠시 긴장이 돌았던 왕비와 콜랭 사이의 분위기가 부드러워지길 바라는 왕의 배려였다.

―그리 봐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이 경회루에 와보고 매우 놀랐습니다. 이 아름다운 누각을 가진 조선이야말로 예술의 나라입니다.

콜랭은 허리를 굽히며 말없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왕비를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왕비는 의자 건너로 팔을 뻗어 병약해 보이는 왕세자의 손을 잡고 있었다.

―전하께서는 도자기 감상을 즐겨 하시지요. 법국의 도자기는 어떤 모습인지 나도 궁금하군요.

언제 매섭게 쏘아붙인 적이 있었냐는 듯 왕비의 말씨가 상냥하게 변해 있었다. 입가에도 잔잔한 미소가 번져 있다. 왕만이 드나드는 정전의 가운데 문을 통과해온 붉은 비단보에 싸인 세브르 도자기가 왕 앞에 놓인 탁자 위에 나란히 펼쳐졌다.

―어서 풀어보시오.

콜랭이 세브르 도자기를 싸 놓은 붉은색 비단 천 매듭을 풀었다. 조선에서의 붉은색은 군주를 상징하고 왕만이 사용할 수 있는 색이라는 말을 듣고 애써서 구한 붉은 비단보였다. 비단보가 풀어지자 가운데에 프랑스의 그랑 성이 그려져 있는 항아리, 신화 속의 전투 장면이 새겨진 둥근 접시, 양쪽에 귀가 달려 있는 나지막한 물병이 가만히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