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희극보다 비극을 주목한다. 비극의 거울이 우리의 삶을 더 깨끗이 비추기 때문이다. 2002년도 오늘의 작가상과 올해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이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과 만난 뒤 가슴 한 구석이 허전해 졌다. 삶을 견뎌내야 하는 이들의 처연함, 생명 가진 자들이기에 겪어야 하는 존재의 근원적 슬픔 등이 진지하게 읽힌다.
소설집에는 7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첫 작품 '무화과 나무 아래'는 이라크 전쟁터로 끊임없이 자신을 내모는 다큐멘터리 감독의 이야기다. 러시안 룰렛이라도 하듯 목숨을 건 취재현장에 뛰어드는 이 남자는 장기를 이식받은 뒤 남의 생명을 도둑질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사랑하는 여자의 만류도 그의 이라크행을 막지 못한다. 인도 취재여행 도중 병을 얻은 그는 장기매매 조직을 통해 사형수의 신장을 얻었다. 그 여행에서 총탄에 자식을 잃은 억울함을 호소하는 인도 여자를 만났던 기억이 장기이식으로 살아난 자신을 비관하게 만든다. '어차피 사형수였고, 살아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양심과 타협할 핑계가 있다는 사실이 그를 더 곤혹스럽게 한다. 그는 "나 자신이 한 편의 비루한 다큐"(65쪽)라고 고백한다.
두번째 작품 '무언가'와 끝에 실린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는 현상과 본질 사이의 불일치가 있기에 소설이 쓰여진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무언가'에 나오는 텔레마케터는 매일 전화를 걸어 부동산 상품을 홍보한다. 하루 종일 혹사당한 목소리는 밤마다 갈라지지만 그로 인해 그녀는 전화를 받은 한 남자의 연인이 된다. 그는 "밤이 깊을수록 네 목소리는 점점 섹시해져"라고 말한다. 그녀는 아라비안 나이트를 만들었다는 세헤라자데처럼 그에게 목소리를 들려준다. 주로 꾸며댄 것들이지만, 날이 갈수록 자신이 실제 경험한 것들과 얽히며 어느 것이 참이고 거짓인지 그녀 스스로 헷갈린다.
'발칸의 장미…'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자신의 삶을 포장하는 기러기 아빠의 이야기다. "당신을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말을 남긴 채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떠난 아내. 그 후 남자는 삶이란 보여주기 위해 무대에 올리는 연극 같다고 생각한다. TV에 출연해 미국으로 떠난 가족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그는 쓸쓸함을 견디지 못해 아랫집 여자와 정을 통한다. 아랫집 여자는 그런 남자에게 혐오와 연민을 함께 느낀다. 그러나 그가 쓰러져 죽자 조사하러온 경찰에게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해 버린다.
소설은 삶에 새겨진 상처들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상처는 치유되지 않는다. 우리의 삶은 그 상처가 준 고통에 익숙해질 뿐이다. 작가는 "내 소설을 읽고 나면 오후의 염전에 남는 소금처럼 슬픔의 덩어리가 남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