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월드컵에는 '김성주의 재발견'이라는 소제목 하나 붙여줘도 괜찮지 않을까.
올해 MBC의 월드컵 중계에선 차두리 어록(語錄)이 탄생하는가 하면, 김성주(34) 아나운서와 차범근-차두리 부자(父子)의 진행을 일컬어 '토크쇼식 중계'라고 부르는 등 여러 가지 화제를 낳았다. 특히 김 아나운서는 차 해설위원과 정상적인 진행을 하는 듯 하다가도, 차두리 선수와는 금새 동생과 수다 떨 듯 방송을 진행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시청자들에겐 선한 눈매를 가진 유쾌한 젊은 TV프로그램 진행자로 각인된 남성 MC. 그런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월드컵 축구 중계 캐스터를 맡게 됐다는 소식에 '스포츠 중계는 프로의 영역인데…' '너무 경험이 없지 않은가' 등의 반응이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대성공. 오히려 "고정된 틀에 매어 있던 스포츠 중계 방식을 탈피해 새로운 중계 스타일을 선보였다"는 평가도 받았다.
사실 그만큼 '준비된' 스포츠 중계 진행자도 없었다. 2000년 1월 MBC에 입사하기 전 그는 지금은 사라진 한국스포츠TV에서 3년 동안 캐스터로 일했다. "3년 동안 1000경기 정도를 중계했어요. 메이저 방송사에선 10년을 해도 할 수 없는 경험이죠." 당시 그는 하루에 세 경기쯤은 밥 먹듯이 진행했다. 오전에 미국 메이저리그나 NBA농구 한 경기 진행을 하고, 오후에는 당구나 경마 테니스 같은 비인기 종목, 그리고 오후에는 한국 프로야구 중계…. "독일에서도 목이 아파 하루 쉰 적은 있지만, 꾸준히 매일 한 경기씩 채워나갈 수 있었던 것이 당시에 매일 중계를 하면서 목에 굳은 살이 배겨서 그런 것 같다."
그는 "마이너 방송사 시절 배운 것은 기교보다 방송의 소중함"이라는 말을 빠트리지 않았다. "작은 케이블 방송사에 근무하면서 메이저 방송에 출연하는 사람들에 대한 동경이 있었죠. MBC에 들어와 5분짜리든, 10분짜리든 프로그램 하나하나를 고맙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케이블TV 시절 결근한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대신해 출연자의 분장을 해주고, 다시 진행자로 돌아갔던 '굴욕의 순간'도 지금 그에겐 자양분이 됐다.
독일에선 긴박했던 순간도 많았다. 차두리가 "이건 사기입니다" 돌발(?) 멘트를 날려버린 한국과 스위스의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 그는 "이미 일은 저질러졌고, '중립을 지킬 것이냐 아니면 국민들의 정서를 따라갈 것이냐' 고민이 앞섰다"고 했다. 그는 결정을 했다. 차두리의 말을 받아 "심판 때문에 경기가 망가져서 마음이 아픕니다…"라고 이어 갔다. 그는 "A매치 중계는 일반 중계 진행과는 달리, 국민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는 쪽으로 갔다"며 "과연 내가 잘 했는가 끊임없이 생각했지만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차 위원과는 처음엔 서먹서먹해 한국팀이 골을 넣었을 때 차 선수하고만 끌어안고 펄쩍펄쩍 뛰었다. 하지만 나중엔 '차붐-두리' 부자를 알아보는 독일 팬들로부터 두 사람을 보호하는 보디가드까지 자처할 정도로 친해졌다.
한국을 떠날 때 축구 시청률이 좋지 않을 경우, '가족애발견' 등 진행하던 프로그램에서 손을 놓게 되는 것 아닐까 걱정도 했지만, 오히려 일복이 터졌다. 다음주부터 그는 원래 진행하던 프로그램 외에 일요일일요일밤 '경제야 놀자' 코너, '황금어장', 그리고 아직 논의 중인 다른 프로그램 등에 추가로 출연하게 됐다.
최근 부쩍 많아진 아나운서의 연예오락 프로그램 진출에는 찬성하는 입장. 방송에 입문할 땐 뉴스 진행을 꿈꿨지만, '2대8 가르마'(남자 뉴스 진행자의 헤어스타일)는 일찌감치 포기했다. 대신 헤어스타일과 옷차림을 자유분방하게 하고, 성대모사 등 엔터테이너로서의 재능을 보여주는 길을 택했다.
"뉴스는 기자들이 맡고, MC는 연예인이 많아지면서 아나운서로서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는 게 그의 생각. "아나운서답지 않다는 말이 오히려 좀더 많은 가능성을 인정해주는 말처럼 들립니다. 물론 그건 선배들이 양보하고 이해해 주셔서 가능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