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보〉(113~126)=바둑과 관련된 이세돌의 의식 창고는 '끊고 조이고 몰아치는' 공격적 마인드로 가득 차 있다. 더 넓은 땅을 개간하겠다든지, 자신의 식솔들을 우선 안전하게 대피시킨다는 따위의 수동적 발상은 떠오르지 않는다. 이런 성향은 그 특유의 면도날 같은 감각, 섬광처럼 빠르고 깊은 수읽기 능력과 조화를 이루며 가공할 파괴력으로 폭발하곤 한다.
앞서 백 ?는 6분 30초를 숙고한 수. 이 점으로 113에 잇고, 흑 '가' 때 중앙 석 점을 버린 뒤 '나'쯤으로 상변을 경영했어도 백이 좋은 형세다. 하지만 이세돌의 사전에 그렇게 미지근한(?) 흥정은 없다. 113으로 117 쪽을 먼저 뚫으면 참고 1도 14까지 알기 쉽게 흑의 패배가 결정된다.
120으로 121에 바로 막는 수는 잘 안 된다. 참고 2도의 쌍방 치열을 극한 백병전 끝에 백이 먼저 갇히는 것. 126까지 직선적인 '돌격 앞으로'를 지켜보던 검토실은 "백이 좋은데 왜 무리를 하느냐"는 분위기였다. 과연 이세돌의 무리였는지는 곧 밝혀진다. 거대한 흑 대마의 운명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