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바다‐ 한숨바다 12일 새벽부터 내린 비로 일산 화정천에서 넘친 빗물이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화정동의 농경지를 덮쳤다. 농경지에 있던 벼와 고구마, 옥수수는 물에 잠겨 흔적조차 보이지 않고 농경지 주인은 한숨을 짓고 있다.

12일 지하철 3호선(일산선) 고양시 구간의 운행 중단을 부른 정발산역과 화정역 침수 사태는 장마철을 앞둔 수해 예방 점검에 등한했기 때문이었다.

출근길 승객이 몰린 오전 8시30분 정발산역. 역 바로 옆에 건설 중인 대형 문화시설 일산아람누리(지하 2층, 지상 4층, 연면적 5만평) 공사장 지하에 고인 빗물이 역(지하 1층)으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람누리에서 정발산역을 연결하려고 만든 지하통로가 문제였다. 시공사인 S건설은 13m를 뚫고 1.2m만 남긴 상태에서 공사를 일단락한 뒤, 직경 30㎝짜리 구멍을 내 제 위치로 뚫었는지를 확인한 다음 두께 2㎝짜리 합판으로 막아 놓았다. 이 건물의 건축주(시행사)는 바로 고양시다.

빗발이 굵어지며 공사장 뒤 정발산에서 흘러내린 빗물은 배수관이 넘치자 공사장 지하로 유입돼 지하 연결통로에 모였다. 이 수압에 합판이 쪼개지면서 대합실과 지하 2층 선로를 향해 몰려간 것. 이로 인해 오전 8시45분 열차는 무정차 통과했고, 9시부터는 대화~지축(19㎞) 간 운행이 전면 중단됐다. 출근길 시민이 버스·택시로 몰리면서 일산·화정·원당 등에서는 대혼란이 빚어졌다. 정발산역의 물은 바로 옆 마두역도 침수시켰고, 오후 1시30분쯤에야 빼낼 수 있었다.

고양시는 "공사장에 양수기 10대를 두고 나름대로 장마에 대비했다"며 "이렇게 많은 비가 올 줄은 예상 못했다"고 말했다. 엄청난 폭우는 인정한다고 쳐도, 지하철의 '최후 방어선'으로 겨우 합판 한 장 붙여 놓은 무감각에 대한 비판은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이어 오후 1시. 화정역의 지하 선로도 사람 허리 높이까지 침수됐다. 인근 대장천에서 오전 11시쯤부터 넘친 물이 지상역인 대곡역과 지하역인 화정역의 중간 지점에서 터널을 타고 선로를 따라 흘러들어 온 것. 300명이 양수기 30대를 동원해 물빼기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화정역측은 "이런 상황이 벌어질 줄은 사실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일반도로 역시 상황은 심각했다. 오전 6시부터 쏟아진 비에 곳곳이 물바다로 변해 가더니 오전 9시쯤에는 일산 중앙로와 원당지하차도 등 60여 곳이 무릎 높이까지 차 올랐다. 출근길 차들은 도로에 늘어섰고, 일부는 물속에서 고장 나 멈춰서면서 도로 전체가 아수라장이 됐다.

이 같은 사태는 예상을 훨씬 웃돈 기록적 폭우 말고도, 고양시가 평소 펌프장 용량을 증설하지 못했고, 장마철에 대비해 배수시설도 제때 손보지 않아 화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특히 일산을 포함한 고양 지역은 대부분이 상습적으로 수해를 입어온 저지대다. 일산신도시는 1998년에도 이번처럼 도로 대부분이 침수된 경험을 갖고 있다.

고양시는 이날 배수펌프장 13곳과 간이펌프장 77곳을 모두 가동했다. 하지만 대화·신평 등 4곳을 제외하면 배수 용량이 분당 수백t에 불과하다. 시는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펌프장 증설과 용량 확대에 나설 예정이었다"고 말했다. 도로변 배수시설을 미리 정비하지 않은 것도 사태 심화의 원인이 됐다. 최근 몇 차례 온 비에 온갖 오물로 막힌 배수구를 제때 청소만 했어도 피해는 훨씬 덜했을 것이란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