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일본은 '부자 나라, 가난한 국민'이란 꼬리표를 달고 다녔다. 그 유명한 '살인 물가' 탓이다. 반면 한국은 "나라는 일본보다 가난해도 개인은 더 잘 산다"는 말을 진리처럼 믿어왔다.
하지만 요즘 일본을 여행 다녀온 사람들은 이구동성 "어, 일본 물가가 더 싸네"라고 말한다. 실제 최근 몇 년 사이 한국과 일본의 물가는 많은 부분에서 역전됐다.
급락한 환율(원화강세) 탓만은 아니다. 일본은 지난 10여년간 '가격 파괴'라는 격렬한 물가 하락을 경험했다. 거품경제 때 과다하게 치솟은 가격의 합리화 과정이었다. 지난 10년 사이 일본의 물가 하락률은 8.4%. 400엔짜리 고기 덮밥 값이 330엔으로 내려갔다(덮밥체인 '요시노야').
반면 같은 기간 한국의 평균 물가는 36.3% 상승했다. 설렁탕 값은 3500원에서 7000원으로 올랐다('이남장' 설렁탕).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하는 '상대국 물가지수'를 보면, 일본과 한국의 물가는 10년 전 2.64배 차에서 1.35배로 축소됐다. 전체적으로 아직은 일본이 높다는 뜻이지만 국민이 체감하는 생활물가를 접하면 얘기가 다르다. 최근 미국 머서휴먼리소스 컨설팅이 세계 144개 대도시의 주택·교통·음식비 등 물가를 분석한 결과에서 서울 물가는 도쿄보다 비쌌다.
실제로 서울과 도쿄에 거주하는 본지 기자 2명이 실생활에서 공통적으로 자주 이용하는 39개 상품과 서비스를 골라 가격을 비교했다. 그 결과 24개 품목은 서울이, 13개 품목은 도쿄가 비쌌다. 2개 품목은 거의 비슷했다.
열차 등 교통비와 전기·가스 등 공공요금은 여전히 일본이 비쌌다. 하지만 집값, 휘발유값과 골프·스키 등 고가의 제품·서비스일 수록 한국이 비쌌다. 농축산물, 음식값 등에서도 상당수 일본 물가를 따라잡은 품목이 나타났다.
한국 물가가 일본을 추월한 것은 경제력이 강해져서가 아니다.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은 3만7050달러(2004년). 한국(1만4000달러)의 2.6배다. 어떤 통계를 찾아봐도 우리는 일본인보다 못 산다. 물가역전을 합리화할 어떤 근거도 없는 것이다.
한·일 물가역전의 배경에는 정부의 세금폭탄과 규제에 따른 독점 가격, 기업의 나태와 폭리가 숨어있다. 왜 한국민은 '덜 벌면서도 더 비싼' 경제에서 살아가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