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가 고향인 내가 전라도 전주와 광주에서 보낸 시간이 이제 13년을 넘어섰다. 적지 않은 세월이지만, 전라도 문화를 제대로 알려면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다. 전라도 생활의 기쁨 중 하나가 전라도 말과의 조우다. 전라도 말 중 '귄 있다'라는 말이 내겐 각별히 각인되어 있다. 그 말을 접하고도 한동안 정확한 의미를 모르고 지내던 차에, 전라도 토박이들과의 모임에서 장난스러운 타박까지 들어가며 말의 의미를 얼추 이해하기까지 조금 과장하자면 몇 년이 걸렸다.

'귄 있다'란 말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특별히 외모적으로 빼어난 아름다움이 있는 것은 아니나 가볍지 않은 아름다움과 속 깊은 인간미가 배어난다는 정도의 의미 같다. 단 세 글자로 구성된 짧은 말에 담긴 의미를 따져보면, 세상에 이처럼 함축적이고도 맛깔스러운 말은 드물 듯하다. 내 고향 충청도에서는 이에 해당하는 말을 찾기 힘들다. 비단 이것뿐만이 아니어서, 전라도 말은 내게 색다른 언어적 경험이자 감성 지평의 확대였다.

운명공동체로서 하나의 모어(母語)를 사용하며 사는 사람들일지라도 어떤 느낌이나, 현상, 사물을 가리키는 데 있어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른 어휘를 사용하고 있다. 이는 지역마다 조금씩은 달랐을 삶을 그 지역 사람들 나름의 숨결로 읽어 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한 지역에서 통용되는 말은 그 지역의 자연과 어우러진 삶의 숨결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고, 그만의 풍토를 담고 있다.

허수경의 시집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을 보면, 앞부분에 표준말로 시를 쓰고, 이어 시인의 고향인 진주 말로 번역(?)한 시를 배치해 놓고 있다. 진주 말로 쓴 시는 표준말로 쓰인 시를 참고로 하지 않는다면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바로 그 이해의 간극 속에 진주 사람만의 삶이 녹아 있다고 보아야 한다.

한데 아쉽게도 사투리가 갖고 있는 풍부한 어휘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사투리를 잃어 간다는 것은 우리의 삶이 이제 자연과 멀어져 가고 있고, 우리의 삶과 문화를 풍요롭게 해 주었던 풍토를 잃어 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현상의 배후에는 중앙집중형 사회시스템이 한몫 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중앙집중화 현상은 수직화의 형태를 띤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문화에 있어 우열개념까지를 포함하는 이 같은 수직화는 치명적이다.

문화는 끊임없이 분화와 통합을 반복한다. 분화는 문화를 풍요롭게 만들고, 통합(수평적)은 새로운 분화를 창출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수직적 통합은 문화적 분화를 막아 궁극에는 문화를 사막화한다. 수직적 문화 통합 속에서는 분화의 소산인 사투리도 위기에 몰릴 수 있다. 언어는 공동체의 정신이고, 삶이다. 각 지역의 말이 갖고 있는 풍부한 어휘의 소멸은 자연과 맞닿은 삶을 표현해 주는 상징체계의 소멸이자, 다채롭고 풍요로운 문화적 자산의 멸실을 의미한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말들을 곱씹어 보라, 얼마나 아름다운 삶의 결들이 그 안에 켜켜이 쌓여 있는가!

(천세진·시인·광주대 대외협력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