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최인훈은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월남한 실향 소설가가 아침에 집을 나서 하루 동안 만나는 사람과 사건들을 썼다. 90년대엔 주인석이 ‘소설가 구보씨의 하루’를 내놓았다. 유신과 광주의 비극을 보고 자란 젊은 소설가의 하루 이야기다. 주인석은 영화평론집 ‘소설가 구보씨의 영화구경’도 발표했다. 오규원의 연작시 ‘시인 구보씨의 일일’에, 환경생태 안내서 ‘녹색시민 구보씨의 하루’까지 나왔다.

▶구보(丘甫)는 1930년대 모더니즘 문학의 기수 박태원(1909~1986)의 호(號)다. 그의 체험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스물 여섯 서울토박이 구보가 청계천변 집을 나서 종일 시내를 쏘다니는 얘기다. 우리 문학사에 드물게 패러디로 진화해 온 ‘구보형 소설’들의 원전이다. 무기력한 지식인 ‘구보’는 후배 소설가와 시인들이 사회에서 겉도는 주변인의 눈으로 도시의 일상과 권태를 묘사하는 데 제격이었다.

▶박태원은 해방 후 좌익 조선문학가동맹의 중앙집행위원에 뽑혔으나 적극 나서진 않았다고 한다. 정부수립 후엔 김기림 정지용과 보도연맹에 가입하고 전향성명서까지 냈다. 그는 6·25 직후 친구 이태준을 만난다며 북으로 떠났다. 가족들은 “와이셔츠 바람에 운동모를 쓰고 헝겊 배낭을 메고는 인왕산 등산가던 때처럼 떠났다”고 기억한다. 박태원은 월북 후 곧장 30년 병마에 빠졌고 그러는 동안 소설가의 미망인 권영희와 재혼했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구보, 곧 박태원은 종로 제비다방에서 친구를 만난다. 제비다방을 운영했던 이상(李箱)이다. 둘은 더할 나위 없는 단짝이었다. 북에서 맺어진 권영희는 공교롭게도 이상의 연인이었다. 그녀는 박태원이 실명한 뒤 ‘갑오농민전쟁’을 더 쓸 수 없게 되자 구술받아 완성했다고 한다. 그제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에서 박태원의 큰딸이 남쪽 동생들을 만났다. 그녀는 “조카가 유명한 영화감독인 줄 몰랐다. 조카의 영화를 보고 싶다”고 했다. ‘살인의 추억’을 쓰고 연출한 봉준호가 박태원의 외손자다.

▶박태원은 오래 전 세상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괴로워했었다. "문체와 형식만도 가히 조선문학에 새 경지를 개척했다 할 것이건만 누구 한 사람, 이를 들어 말하는 이가 없다." 이제 '구보씨의 하루'를 후학들이 고전으로 받들며 대대로 새끼치는 걸 보면 마음이 풀릴지 모르겠다. 그의 천재적 예술가 피가 외손자에게 이어지고 있는 것까지 알면 지하에서 미소지을 것이다.

(김기철 논설위원 kichu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