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녀석은 정말 많은 여자들을 만나고 다닌다.
블랙카드가 꽂힌 악어가죽 지갑이나, 발레파킹을 맡기면 매장 입구에 자랑삼아 세워둘 외제차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럼 외모가 완전 디지털 고화질이냐고? 물론 아니지.
근데 녀석은 그 와중에 별종처럼 정말 많은 여자를 만나도 다닌단 말이다. 물론 부지런한 것도 있겠지. 시청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것보다야 청담동 SM엔터테인먼트 사무실 근처에 있으면 동방신기 오빠들을 만날 가능성이 더 크듯, 근무 중에도 틈틈이 화상채팅방에 들러 외로운 여인들의 말벗이 되어주고 퇴근 후, 고단한 몸을 이끌고 그 요란한 무도회장을 기어이 찾아가는 남다른 노력도 있었겠지. 하지만 기다렸다는 이유만으로 영웅재중 오빠가 '후훗~ 넌 참 부지런한걸!!'하며 데이트를 해 줄 까닭이 없지 않은가?!
주제파악도 못하고 저지르긴 했다만 그래도 나름 영화 '작업의 정석'이라는 거창한 제목의 시나리오를 쓴 나조차도 감을 못잡겠는 녀석만의 '기술'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며느리도 모른다는 양념의 비밀을 어깨너머로 훔쳐내려는 보조 주방장의 심정으로 며칠간 녀석의 작업 현장을 따라다녀 보았다.
그가 내게 전수한 작업의 기술은 배운다고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만만한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녀석은 '끈기', '인내' 등과 같은 고결한 단어들을 들먹였지만 실상은 그냥 무턱대고 마냥 조르는 것이었다.
죄송하지만 내 타입이 아니시라고 알아듣게 설명을 해도, 싫다는데 왜 자꾸 이러냐며 화를 내도, 그럼 오늘은 피곤하니까 다음에 차나 한 잔 마시자며 달래도, 심지어 꺼지라고 막말을 해도 녀석은 한국말 전혀 못하는 교포3세처럼, 배운 한국말이라곤 "같이 나가서 술 한 잔 더 해요"밖에 없는 듯, 미친 척 앵무새가 되는 것이다. 그러길 두 시간! 점점 지쳐 보인다 싶던 여자의 입에서 결국 이런 말이 나오더라. "그래요! 그래! 나갑시다! 나가!"
도무지 써먹을 자신이 없는 기술을 배우고 돌아오며 이런 생각이 들더라. 서른 다섯 해를 살며 자랑스러울 건 없지만, 그렇다고 부끄러울 것도 없는 나의 연애 리스트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내가 불쌍해서, 혹 거절하지 못해서, 심지어 딱히 만나고 있는 누군가가 없어서, 나와 데이트를 하고 사랑을 속삭였던 사람이 있었을까? 반대로 내가 그런 이유로 누군가를 만난 적은 없었던가?
잠깐 비가 그쳤고 상쾌해진 공기만큼 내 대답은 짧고 명쾌했다. '이제 그런 연애는 하지 말자!' 나는 누군가에게 사랑을 앵벌이 할 만큼 작은 사람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사랑을 동정할 만큼 커다란 사람도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사람이 그렇듯 말이다.
(신정구 방송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