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반 46분. 교체되면서 그라운드를 나온 지네딘 지단은 파란색 주장 완장을 바닥에 내팽겨쳤다. 신경질적이었다. 레몽 도메네크 감독이 건네는 악수 요청도 못본 체했다. 경기 중에는 흘러내리는 완장을 애써 끌어올리곤 했지만 그것을 내던질 때는 짜증을 이기지 못했다.
후반 40분. 지단은 마지막 투혼을 불살랐다. 티에리 앙리의 발 끝에 바로 걸리는 패스를 찔러줬다. 앙리는 1대1 찬스를 얻었지만 이운재의 선방에 막혔고 지단은 마침내 폭발하고 말았다. 앞에 서 있던 김영철을 두 손으로 신경질적으로 밀치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했다. 심판은 옐로카드를 지체 없이 꺼냈다. 이미 스위스전에서 경고를 받았던 그는 24일 토고전에 뛸 수 없게 됐다.
지단의 한국과의 악연은 지난 2002년 5월 26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한국과의 평가전에서 지단은 김남일의 투지 넘치는 수비에 묶이다 허벅지를 다쳤다. 지단은 조별리그 첫 두 경기를 걸렀고 당시 디펜딩 챔피언 프랑스는 조별리그 무득점 1무 2패를 기록하고 되돌아갔다.
악연은 이 정도에서 마무리되지 않을 수도 있다. 만약 프랑스가 16강전에 진출하지 못한다면 UEFA(유럽축구연맹)가 '지난 50년 동안 가장 위대한 선수'로 선정하고 FIFA(국제축구연맹)가 세 번이나 '올해의 선수'로 뽑은 지단에게 한국전은 생애 마지막 공식 경기가 된다. 지단은 이미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팬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고 이번 월드컵을 끝으로 선수생활을 접겠다고 공언해 왔다. 로이터통신은 '시간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으며 그것은 지단에게도 마찬가지'라는 기사에서 '한국전을 끝으로 지단에 대한 평가는 역사책에 맡겨야 할지도 모른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