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 프랑스 경기가 열린 18일 밤(현지시각) 파리. 프랑스 축구팬들의 눈과 귀는 온통 프랑스 TV ‘TF1’의 축구 생중계에 쏠려 있었다.

경기 시작 20분 전. "아, 한국은 결코 프랑스를 이긴 적이 없지요. 두 번 붙어 두 번 모두 우리가 이겼어요. '붉은 악마'가 2001년 컨페더레이션스컵 대회에서는 0대5로, 2002년 월드컵을 앞둔 친선경기에서도 2대3으로 졌어요."

생중계를 시작하는 아나운서 티에리 쥘라르디와 해설자 장 미셸 라케, 아르센 벵거(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아스날 감독)의 목소리는 느긋했다. 스위스와 득점 없이 비기는 바람에 프랑스대표팀이 언론의 집중타를 맞긴 했어도, '약체' 한국과의 경기만큼은 승산이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드디어 경기 시작. 불과 9분 만에 프랑스 아나운서의 목소리 볼륨이 최대한으로 커졌다. "앙~리~ 뷔이이이이이이트~~~!(골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아이고, 월드컵에서 8년 만에 처음 골 터진 거죠?"

초반 기선을 잡은 프랑스팀의 중계방송. 한국팀이 전반전 내내 경기를 풀어나가지 못하자 '아트 사커' 프랑스의 '아트 중계'도 한껏 여유를 부렸다.

"네, 프랑스팀이 62%의 볼 점유율을 보이고 있군요."

"아, 네, 프랑스의 4번째 슛, 한국은 전혀 슛을 못 날리고 있지요."

"프랑스의 7번째 슛, 한국은 여전히 슛이 없어요."

"프랑스가 그라운드를 완~전~히 지배하고 있지요?"

전반전이 프랑스팀의 우세로 싱겁게 돌아가는 듯하자 TV의 중계방송도 긴박감이 떨어졌다. 한국 선수들을 평가하는 여유를 부렸다. "한국 선수들은 2002년 월드컵 끝나고 해외 시장에 대거 진출을 시도했어요. 김남일 선수도 네덜란드에 진출했지만 별로 성공하지 못했죠." 해설자인 아르센 벵거 감독이 이 말을 꺼내놓고 "아마 유럽 선수가 아시아 그라운드에 가서 뛰어도 마찬가지로 잘 적응 못했을 것"이라고 서둘러 뒷수습을 했다.

전반 32분. 비에라가 헤딩슛을 날리자 "비에라의 헤딩! 들어갔어요!! 아, 그런데 심판이 골로 인정을 안 하는군요"라고 아쉬워했다.

후반 들어 설기현 선수가 투입되자 아나운서는 다시 "영국의 후보 선수 아니냐. 경기 하는 걸 못 봤다"고 말을 꺼냈다. 그러자 얼른 해설자가 "아니다"라고 정정하면서 설기현의 활약상을 소개하기도 했다.

한국을 편안하고 느긋한 상대로 여기던 중계방송도 후반 들어 조금씩 톤이 바뀌기 시작했다.

"어, 한국이 전반전과 다른 분위기로 가고 있네요. 아직 골로 이어지는 위협은 없지만 공 잡는 찬스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한국이 점점 밀고 올라오고 있어요."

"볼 점유율이 50대50이 됐습니다."

후반전 도중 프랑스 아나운서는 박지성 선수의 이름을 놓고 "지성이란 '현명한 별'이라는 뜻"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몇 분 후. 후반 36분. 프랑스 아나운서가 놀랐을 때 터뜨리는 프랑스어 감탄사 "올~랄~라!"를 연발했다. '현명한 별'이라고 소개했던 박지성이 이름값대로 빛나는 동점골을 터뜨렸기 때문이다. "박이 골을 넣었군요. 약간 엉뚱한 골이긴 하지만."

옆에 있던 해설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뭔가를 보여줘야 하는데"라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걸 감안한 듯 초조해했다. 지단이 옐로카드를 받은 뒤 교체되자 아나운서는 "아, 경기 끝 무렵에 정말 꼬이네요" 하면서 안타까워했다. 승리의 여신은 더 이상 프랑스를 향해 웃지 않았다. 이날 경기가 끝나고 새벽까지 앵포스포르 등 프랑스의 스포츠전문 케이블TV에서는 "체력이 어떻게 후반전 들어 그리 뚝 떨어질 수가 있나", "너무 계산만 하고 따지다 그런 것 아니냐", "역대 최고로 늙은 팀"이라며 프랑스팀에 대한 비판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파리=강경희특파원 khkang@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