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
그가 있어 한국은 행복했다.
'산소 탱크' 박지성. 공이 가는 곳엔 그가 있었다. 0―1로 패색이 짙던 후반 36분 박지성은 중앙으로 순식간에 달려들었다. 그의 발을 떠난 공은 골문으로 스르르. 이미 문 앞으로 몸이 쏠렸던 프랑스 파비앵 바르테즈 골키퍼의 손끝을 스치며 빨려 들어갔다. 무표정하던 그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동점골. 16강의 청신호를 밝히는 눈물같은 골이었다.
동료들에게 둘러싸여 환호성을 내질렀다. 목이 마른지 물을 쏟아부었다. 앳된 얼굴이 상기 됐다. 61경기 출장 5골에 그쳤던 A매치 골. 공격수 안정환이 62경기 출장해 16골을 터뜨린 것에 비하면 3분의 1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에게 골을 기대하는 건 무리라는 일부 평도 있었다. 대신 그의 특기인 공간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바랐었다. 이번 경기를 앞두고 핌 베어벡 코치는 "모든 것을 박지성한테 걸고 있다"고 측근한테 전했다. 프랑스의 중앙 수비라인이 워낙 튼튼하기 때문에 박지성의 측면 돌파에 기대를 한 것이다. 그런데 박지성은 그 이상을 해냈다. '골결정력이 없다'는 우려를 불식시킨 천금같은 골. '역시 박지성'이라는 감탄사가 절로나왔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입단하면서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그의 골감각을 믿어 4·3·3의 측면 공격수로 쓰려고 했던 판단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그 장면이 생각나는지. 아스날과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첫 골도 이와 다름 없었다. 골을 끝까지 놓치지 않는 것. 웨인 루니의 패스가 오는 걸보고 중앙부터 폭발적인 스피드로 달려갔던 그 상황. 박지성은 아마 그때를 기억했을 것이다. 설기현의 크로스가 오는 순간 달려가던 그의 엔진은 갑자기 급속도로 빨라졌다.
이날 초반 박지성은 답답해 했다. 끊이는 패스, 밀리는 미드필더, 선제골 허용까지. 왼쪽 오른쪽을 오가면서 상대를 휘저었지만 워낙 수비가 탄탄해 밀리는 듯 보였다. 그는 여기서 좌절하지 않았다. 왼쪽 윙백 아비달의 질주를 끝까지 달려가 막았고, 김남일의 패스를 받아 틈새를 노렸다. 하지만 상대의 수비벽은 높아만 보였다.
그러나 신형 엔진은 멈추지 않았다. "프랑스는 역시 강하지만 넘지 못할 상대는 아니다"고 했던 그의 말대로였다. "한국인은 밑바닥 부터 갖고 있는 투혼으로 살아간다"고 했던 그. 그는 이날 한국의 자존심을 바짝 세웠다. 어릴적 일기장에 "나중에 어른이 되면 국가대표가 꼭 되고 싶어요. 한국을 대표하는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어요"라고 끄적였던 것을 그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박지성이 웃었다. 대한민국이 웃었다. 19일 대한민국은 행복했다.
(라이프치히=최보윤특파원)
(spica@chosun.com)
이운재
후반 40분. 1―1 동점을 만든 뒤 4분 만에 한국은 곧바로 실점 위기를 맞았다. 티에리 앙리에게 결정적인 슛 찬스를 내준 것. 하지만 한국의 골문엔 듬직한 수문장 이운재가 버티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왼쪽으로 날라가는 슛을 본능적으로 몸을 던져 막았다. 이운재는 전반 32분에도 프랑스 비에라가 헤딩한 것을 넘어지면서 손으로 간신히 쳐내 추가실점 위기를 봉쇄했다. 한국의 수비라인이 번번이 프랑스의 기술 앞에 뚫렸지만 이운재가 있었기에 실점은 단 1점.
월드컵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모두들 그가 4년 전 같지 않다고 했다.
"기량이 예전만큼 못하다". "살이 너무 쪘다."….
김병지의 최종 엔트리 탈락과 맞물려 팬들의 따가운 비난의 화살이 이운재에게 쏟아졌다. 지난 2일 노르웨이와의 평가전에서 상대 선수와 충돌하며 일시적으로 왼쪽 눈이 보이지 않아 중도교체되기도 했다. 하지만 대회가 시작하니 역시 이운재였다. 둔한 옛날 움직임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운재는 1994년 처음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고, 2002년에야 주전으로 뛰었다. 1994년 월드컵에선 최인영에게 밀려 벤치를 지키다 조 예선 최종경기인 독일전 후반전에 출장해 무실점으로 막아낸 게 전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엔 폐결핵이 발목을 잡았고,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는 김병지·서동명에게 밀려 가지도 못했다. 늘 2인자였던 그는 안정된 플레이를 선호하는 히딩크 감독을 만나 주전을 꿰찼고, 7경기를 혼자 뛰면서 5골을 내줬다. 당대 최고 골키퍼로 평가된 올리버 칸(독일)과 '야신상'을 놓고 각축을 벌이는 영광도 맛봤다.
프랑스전은 이운재의 A매치 99경기째. 스위스전에서 '센추리클럽(A매치 100경기 이상)'에 가입한다. 이번 월드컵 참가 선수 768명 중 이 클럽 가입자는 13명뿐이다. 물론 그의 꿈은 2개 대회 연속 16강 진출로 '센추리 클럽' 가입 축배를 드는 것이다.
조재진
조재진이 원톱으로 기용됐을 때, 많은 팬들은 안정환을 떠올렸다. 13일 토고전 역전골의 주인공이었던 안정환이 선발로 나설 것을 기대했기 때문. 하지만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조재진을 중앙공격수로 내보낸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조재진은 강력한 프랑스의 수비진과 경기 내내 몸싸움을 했다. 최전방에 홀로 있을 때도 프랑스 진영을 부지런히 오가며 상대 수비를 지치게 만들었다. 그리고 결국은 후반 36분 박지성의 동점골을 어시스트했다. 설기현의 오른쪽 크로스가 길게 날아갔지만 침착하게 머리로 골문 앞으로 대시하는 박지성의 발에 떨어뜨렸다.
조재진은 지난달 엔트리 발표 직전까지만 해도 월드컵팀 합류가 불투명했다. '킬러' 기질을 가진 이동국에게 밀린다는 평가였다. 이동국이 부상하는 바람에 안정환과 함께 엔트리에 든 조재진은 프랑스전 어시스트로 원톱의 자격을 충분히 보여줬다.
경기도 파주 출신. 축구가 하고 싶어 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로 전학, 대신중·고를 나왔다. 지금은 1m85, 81㎏의 건장한 체구가 됐지만, 중학 때까지만 해도 작은 키와 왜소한 체격이 늘 걱정이었다. 대신고 1학년 때 쇄골이 부러져 쉬는 동안 키가 크기 시작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2000년 수원 삼성에 입단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대표로 뛴 뒤 일본 시미즈 S 펄스로 이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