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방송사와 방송위원회가 전자업체와 합의하지 않고 다채널방송(MMS) 시험 방송을 시작, 디지털 TV의 화질 저하 및 오작동에 대한 시청자의 불만이 거세지고 있다. 앞으로 방송사가 MMS 본방송을 강행할 경우 디지털 TV를 구입한 가구 130만 가구 이상이 제품 수리를 받아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방송사와 가전업체 모두 수천억원에 달하는 수리비용을 부담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어서 소비자가 엉뚱한 부담을 안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지난 5일부터 HD 방송용으로 받은 주파수를 쪼개 여러 개 채널을 내보내는 다채널방송(MMS·멀티모드서비스)의 시험 방송을 시작했다〈본지 5월 31일 A1면 참조〉. 기존 고화질 HD방송(해상도 1080i 방식)은 초당 19메가비트(Mbps·초당 전송 속도)로 영상과 음성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전 세계 HD방송사 90% 이상이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방송사들은 새 HD방송(해상도 720p방식) 시범 방송을 시작하면서 전송량을 초당 13메가비트로 낮추고 남긴 주파수를 이용해 채널을 추가했다.
전송방식 변경 후 방송위원회와 방송사에는 "디지털 TV의 화질이 크게 떨어졌다"는 불만은 물론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릴 수 없다", "채널이 아예 나오지 않는다", "화면이 사각형으로 뭉개진다" 등의 오작동 사례가 접수되고 있다. 오작동은 HDTV(고화질TV)뿐 아니라, SDTV (표준화질TV)를 포함한 디지털TV 전반에 걸쳐 일어나고 있다.
국내 디지털TV 도입 당시 실무 책임자였던 정보통신부 이재홍 과장은 "MMS 시험 방송 후 디지털TV 시청자 대부분이 크고 작은 문제를 겪고 있다"며 "앞으로 MMS 본방송이 도입되면 이미 팔린 디지털TV 340만대 중 40% 이상은 작동 소프트웨어를 넣은 주요 칩을 업그레이드하거나 갈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오작동하는 TV는 130여만대로 추정된다.
지상파 방송사측은 문제 없다는 입장이다. 안경환 SBS 기술팀 국장은 "HD방송의 화질 차이는 육안으로는 구분할 수 없고, 두 방식 모두 국제 표준이기 때문에 가전사가 TV를 제대로 만들었다면 오동작도 있을 수 없다"며 "다채널시장을 빼앗길 것으로 우려하는 케이블업계가 공연한 시비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가전업체들은 "방송사들이 월드컵 마케팅을 벌이고 있는 지금 일방적으로 전송방식을 바꿔 가전사에 대한 불만을 폭주하게 하고 있다"며 "MMS 시험 방송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가전업체 담당자는 "승용차를 만들어 팔라고 한 다음 소, 돼지 같은 가축을 실어야 하니 차를 개조하라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가전업체들은 "전파를 수신해 이를 화면에 나타내는 작업은 섬세하기 때문에 표준을 지켜서 만들어도 방송국과 가전사가 함께 장기간 테스트하지 않으면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AV 전문 사이트인 'DVD프라임'의 정영한 팀장은 "고화질HD 방송을 시작해놓고 중도에 화질을 떨어뜨린 것은 한국이 처음"이라며 "전 세계 방송국 90% 이상이 사용하는 방식과 다른 방식을 굳이 사용하려는 의도가 궁금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