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나이지리아 비아프라 지역이 독립을 선언하면서 터진 내전에서 200만명이 학살당하고 굶어죽었다. 3년을 끈 비아프라 내전이 딱 사흘 그친 적이 있다. 양측은 1969년 1월 휴전 사흘 동안 전투를 벌이는 병사를 총살하겠다고 공포했다. 나이지리아 대표팀과 친선경기를 하러 브라질팀을 이끌고 온 펠레를 보기 위해서였다. 정부군은 펠레를 전투 접경지로 에스코트해 다리 중간에서 반군들과 만나게 해줬다. 축구경기가 끝나자 살육전은 다시 시작됐다.
▶“우리 고장 팀이 이긴 날 사랑을 고백하면 뜻을 이룬다. 진 날 구애하면 따귀를 맞는다.” 축구에 울고 웃는 이탈리아 사람들은 프로리그의 승패를 일상의 길흉으로 여긴다. 브라질에선 승리한 도시의 이튿날 공장 생산율이 12.3% 늘고, 패하면 사고율이 15.5% 증가한다는 통계가 있다. 잉글랜드가 1966년 월드컵에서 우승하자 이민 떠나는 사람이 급감하더니 4년 뒤 4강에도 들지 못하자 이민자가 급증했다고 한다.
▶세상이 어수선할수록 축구도 거칠어진다고 한다. 2차대전 직전인 1938년 월드컵에선 한 경기당 평균 4.67골이 터졌다. 한국전과 경제불안이 겹친 1954년엔 5.38골까지 치솟았다. 평화가 정착된 60년대 이후엔 평균 3골을 넘지 않았고 80년대부터는 2골에서 맴돌고 있다. 사회가 평화롭고 안정되면 안전한 수비축구가 득세하고, 전쟁과 불황이 닥치면 사람들도 투쟁적·모험적으로 바뀌어 공격축구가 성하다는 이론의 근거다.
▶‘미친 서포터가 돼 보지 않고 사랑이 무언지 어찌 알겠니…추가시간에 경기를 져 보지 않고 눈물이 무언지 어찌 알겠니’(월터 사아베드라·절대로). 사람들은 오늘 왜 축구에 열광하는가. 삶이 너무 뻔하고 예의 바르고 안전하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불확실성, 위기, 위험 같은 것을 먹고살기 원한다. 그 갈증을 축구장의 질풍노도가 대신 풀어준다. 영웅이 사라진 시대, 축구라는 현대의 이교(異敎)는 선수들에게 신을 닮은 영웅의 서사를 바란다.
▶내일 새벽 1시 월드컵이 개막한다. 월드컵에 관한 한 한국사회는 전폭 지지라는 완벽한 합의를 이룬 것 같다. 마치 국운이라도 걸린 듯하다. 축구는 그러나 즐기는 것이다. 축구가 펼쳐내는 드라마와 경기의 아름다움에 빠져보자. 모든 것 다 걸듯 하지 말고 한바탕 난장 축제의 생명력을 누려보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축구를 사랑하는 것이다.” 펠레의 말이다.
(오태진 수석논설위원 tjoh@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