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6월 7일 이라크 서쪽 하늘에 낮게 뜬 10대의 이스라엘 공군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후 4시(현지시각) 시나이 반도(당시 이스라엘 영토)의 에치온 공군 기지를 떠난 뒤 요르단·사우디의 사막을 120m의 고도로 가로지른 8대의 F-16과 2대의 F-15 요격기는 90분 뒤 1600㎞를 날아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 동쪽에 오시라크 원자로 돔이 육안에 들어오자 레이더 탐지를 막기 위해 고도를 30m로 낮춰 접근했다.
영국 BBC 방송은 이스라엘의 이라크 오시라크 원자로에 대한 공습 25주년을 재조명하며, 당시 공습은 결코 일부 중동 국가들의 핵개발 의지를 꺾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오시라크 공습은 계획 단계부터 말이 많았다. 공습 참가 조종사들은 당시 최신예 전폭기인 F-16기 출격 경험이 100회를 넘기지 못했다. 아무도 추가 연료탱크까지 장착한 10대의 전투기가 모두 무사 귀환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공군기들은 단 한 대도 격추되지 않았다.

오시라크 원자로의 '위협 정도'와 파괴의 '의미'에 대해선 아직도 의견이 갈린다. BBC 방송은 "많은 이스라엘인들은 오시라크 파괴로 '제2의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를 막았다고 생각하지만, 당시 오시라크에서 일했던 이라크 과학자들은 오시라크 원자로가 매우 초보적이었다고 증언한다"고 보도했다. 당시 이곳을 사찰했던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어떠한 '비밀 프로그램'도 발견하지 못했다. 또 오시라크 공습은 이후 이라크의 핵개발 의지를 부추겼고, 사우디·이란 등의 비밀 핵프로그램 필요성을 자극시켰다.

BBC 방송은 오시라크 공습을 지지하는 이스라엘 군사 전문가들도 현재 광범위한 이란의 핵개발 프로그램과 25년 전 이라크의 오시라크 원자로는 공습 효과에서 판이하게 다르다는 입장이라고 보도했다. 이들은 이란의 핵개발 저지를 위해서는 단순히 외교나 군사위협 정도로는 불가능하며, 전면적인 지상군 투입을 통해 핵시설을 일일이 파괴하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