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이라크전쟁이 터지기 며칠 전 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의 최측근인 리처드 펄 국방정책위원장이 월스트리트의 한 투자은행과 콘퍼런스 콜(전화회의)을 가졌다. 주제는 '임박한 전쟁의 의미, 지금은 이라크, 다음은 북한'이었다. 비밀리에 이뤄진 회의에서 펄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그의 처신을 놓고 뒷말이 많았다. 월스트리트에 전쟁 정보를 흘려준 것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기도 했다.
▶콘퍼런스 콜의 상대방이 골드만삭스였다는 것도 화제였다. 결정적 순간에 행정부 고위인사로부터 직접 고급정보를 빼낼 수 있는 실력을 과시했다는 점에서다. 하지만 놀랍다기보다는 "역시 골드만"이라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뉴욕타임스에 '골드만에서 워싱턴을 잇는 회랑(回廊)'이라는 기사가 실릴 정도로 골드만삭스의 '워싱턴 커넥션'은 정평이 나 있다.
▶조슈아 볼튼 백악관 비서실장, 스티븐 프리드먼 국가경제위원회 의장, 로버트 졸릭 국무부 부장관, 존 코진 뉴저지 주지사, 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 존 테인 뉴욕증권거래소 회장…. 골드만삭스 출신 실력자들을 꼽자면 끝이 없다. '골드만삭스에서 은퇴하면 두 가지 하는 일이 있다. 하나는 골프고 다른 하나는 정치'라는 말이 나돈다. 여기에다 '월스트리트에서 성공하려면 골드만삭스를 거쳐야 한다'고 할 만큼 증권, 사모펀드, 헤지펀드 업계에서도 골드만 출신들이 활약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독일계 유태인 마커스 골드만이 1869년 기업어음 거래상으로 나서면서 출발했다. 1882년 사위 새뮤얼 삭스가 합류하면서 지금 회사 이름이 만들어졌다. 골드만삭스의 가장 두드러진 기업문화는 팀워크다. 1970년대 후반 공동회장을 지낸 존 화이트헤드는 "골드만삭스에서 우리는 절대로 '나'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그렇게 팀워크를 중시하다 보니 희생정신도 강조하게 됐고 그것이 골드만삭스 출신들의 성공비결이라고 한다.
▶부시 대통령이 그제 헨리 폴슨 골드만삭스 회장을 신임 재무장관으로 지명했다. 골드만삭스의 워싱턴 인맥에 또 한 명의 이름이 추가된 것이다. 폴슨은 1999년 골드만삭스 창업 130년 만에 기업을 공개하는 결단을 내리고 지난해 사상 최대인 56억달러의 수익을 내며 뛰어난 경영수완을 발휘했다. 1990년대 미국의 10년 대호황을 이끌어내 역대 최고 재무장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선배' 루빈의 영광을 그가 재현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김기천 논설위원 kckim@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