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재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우리나라는 원전 기술이 전무한 상태에서 불과 30여년 만에 총 20기의 원전을 운영하는 세계 6위의 원전국가로 도약했다. 독자 건설은 물론, 해외 진출을 노릴 만큼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중국과 루마니아,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원전 건설을 희망하는 후발 국가들은 단기간에 원전기술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우리나라를 벤치마킹, 이들 국가와의 수출 논의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5월 16일자 조선일보 1면에 게재된 '100억불 中 原電 입찰 한국 스스로 포기한 격'이라는 기사를 읽고 나서, 한국형 원전 수출업무를 담당하는 회사의 책임자로서 안타까운 심정을 감출 수 없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 초반부터 원전 수출을 추진해 지금까지 약 2억7000만 달러의 원전 기술 및 기자재를 수출, 착실히 기반을 닦아 나가고 있다. 수출국은 중국, 루마니아 등 원전 후발국뿐 아니라 미국 등 원전 선진국들도 포함된다.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의 원전기술은 일부 독립되지 못한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삼성전자의 휴대폰 핵심 기술이 미국 퀄컴 사로부터 도입됐고, 로열티가 아직 지급되고 있음을 굳이 예로 들지 않더라도, 엔지니어링 기반의 산업에서 100% 독자 기술을 통해 사업을 전개한다는 것은 기술적, 경제적으로 매우 힘든 일이다. 아쉬운 일이지만 그게 현실이다.

잘 알려진 대로 우리나라의 원자력 산업은 미국 웨스팅하우스(기술 도입 당시는 ABB-CE)와의 계약을 통해 원천기술을 도입했다. 당시 웨스팅하우스는 우리에게 기술 소유권까지 이전한 게 아니라 기술의 사용권리, 즉 라이선스를 부여하는 계약이었다. 원천기술 보유업체가 회사 존립의 근간이 되는 기술 소유권까지 넘겨줄 수는 없기 때문에 이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기술의 소유권까지도 완전히 획득했다는 논리를 펴는 주장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기술을 이용해 생산한 제품을 판매하는 것과 그 기술 자체를 이전하는 것을 혼동해선 안된다. 제품을 판매할 때는 로열티만 지급하면 되지만 기술 자체를 제삼자에게 이전할 때는 원천기술 보유자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중국에 독자적으로 원전을 수출하는 데는 기술적으로나 법률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 얘기하지만, 해외 진출시 미국의 일부 기술이 필요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도입 기술을 재이전(기술적 용어로 재실시권)할 때는 웨스팅하우스의 사전 동의가 필요한 것이다.

차제에 원전 수출의 선결조건이 완전한 기술자립에 있다고 생각하는 인식은 바뀌어야 한다. 다소 부족한 부분은 컨소시엄이나 전략적 제휴 등을 통해 얼마든지 수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원전의 해외진출을 위해 서로 힘을 모아 수출전략을 짜내고 마케팅 활동을 전개하기에도 아까운 시간에, 사실과 다른 주장을 통해 원전 산업계에 생채기를 내려는 것은 국가적 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실사구시의 시각으로 우리나라 원전기술의 현 수준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원전 수출에 모두 힘을 모으는 지혜가 절실한 시점이다. 현실을 직시하는 게 꼭 불편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소모적 논쟁에 휩싸여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동안 지구촌 곳곳에서는 원자력 발전 건설이 러시를 이루고, 원전 수출의 깃발을 꽂기 위해 소리 없는 전쟁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중재 ·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