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시흥시 주민들은 오는 6월부터 동네 곳곳에서 이색적인 표지판을 보게 된다. 어느 지역에 어떤 건축 허가 신청이 들어왔음을 알리는 표지판이다. 표지판에는 건축물 위치, 건축주, 건물 층수와 높이, 건축 면적·용도 등이 적힌다. 건축물이 어떤 모양이고 방향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설계 도면도 시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다. 통장이나 아파트 입주자 대표 등 주민 대표는 건축물에 대한 주민 요구사항을 수렴해 시청에 알리게 된다. 시청은 주민들의 의견 중 법규상 반영할 수 있는 부분은 건축주에 알려 반영토록 한 뒤 건축 허가를 내주게 된다. 옥외 골프연습장, 가스충전소, 화물터미널, 장례식장, 단란주점이나 유흥주점 같은 위락시설, 러브호텔 같은 숙박시설, 물류창고 등 기피시설이나 혐오시설이 그 대상이다.

건축 계획 내용을 공개해 주민들의 집단 민원을 사전에 막기 위한 '건축 허가 사전 예고제'가 확산되고 있다. 시흥시 외에 전국 몇몇 기초자치단체에서도 이 제도 시행을 준비하고 있다. 이미 서울 양천구, 경기도 용인시, 대전시내 전 구청, 부산시 해운대구, 인천시 남구가 약간씩의 차이는 있지만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기초자치단체들이 사전 예고제 도입에 열성인 것은 주민들의 집단 민원 방지에 상당한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양천구의 경우 시범 운영 결과 사전 예고제 대상이 아닌 건축물의 민원발생률은 78%였으나 사전 예고 대상 건축물은 그 절반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용인시는 작년 22건, 올 들어서는 5월까지 6건의 사전 예고제를 시행했는데 예전과 달리 허가 이후 집단 민원이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26건을 시범 실시한 대전 서구와 유성구도 마찬가지였다.

사전 예고제가 이 같은 효과를 나타내는 이유는 뭘까. 주민들이 자치단체의 행정에 '참여'한다는 그 하나가 가장 큰 이유다. 자신들의 요구와 불만사항이 건축 허가 과정에 반영되니 아무리 기피·혐오시설이라도 뒤늦게 반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용인시의 골프연습장 사례를 보자. 부근 주민들은 연습장이 생기면 그렇지 않아도 좁은 동네 진입로에 차량 통행이 늘어나 교통사고 유발 위험이 높아진다고 우려했다. 이에 용인시는 건축주에게 별도 진입로를 만들든지 기존 진입로 폭을 넓힐 것을 요구했다. 건축주는 이를 수용했고 그 뒤 건축 허가가 났다. 건물의 높이나 방향이 조망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주민 의견에 대해 높이나 방향을 조절하게 해 수용한 사례도 있다.

만약 공무원들이 옛날처럼 법 규정만 따져 일방적으로 건축 허가를 내줬다면 주민들이 집단으로 들고 일어났을 건 물어보나마나다. 그런 사례가 너무도 많았고 지금도 전국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인천시 부평구의 경우 작년 여름 가스충전소 허가문제를 놓고 주민들이 몇 달이나 집단 시위와 농성을 벌였다.

"주민 집단 민원의 가장 큰 이유는 공무원들이 '자신들 몰래' 허가를 내줬다는 겁니다. 법으로만 따지면야 주민들에게 알릴 의무가 없지만 주민들 입장에선 그게 아니지요. 자신들의 생활 공간에 어느날 갑자기 기피시설 공사가 시작된다면 화가 날 것은 당연할 테니까요." 용인시 한 공무원의 말이다.

건축 허가 사전 예고제는 주민을 지역의 주인으로 섬기는 지방자치시대의 작은 실천이 얼마나 큰 효과를 가져오는지를 보여준다.


(김낭기 인천취재본부장 ngkim@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