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트페테르부르크는 온 도시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360여 개 다리마다 대가(大家)의 조각품이 새겨져 있다. 겨울궁전과 여름궁전을 비롯해 제정(帝政)시대 웅장한 건축물과 예술품이 셀 수 없다. 페테르 대제가 18세기 초 건설해 수도로 삼은 이 도시를 푸시킨은 '인간의 뼈 위에 건설된 도시'라고 했다. 도시를 세우느라 숱한 농노(農奴)가 죽었다.
▶1917년 이곳 황궁에 대한 공격과 함께 프롤레타리아혁명은 불타올랐다. 레닌의 고향 상트페테르부르크는 그래서 혁명의 도시이기도 하다. 볼셰비키 정권은 그러나 유적을 부수지 않았다. 고리키가 친구 레닌을 설득한 덕분이다. "오랜 세월이 쌓은 국가의 문화재를 혁명의 폭력이 파괴해선 안 된다." 요즘 이 도시의 후손 500만명에겐 1인당 한 해 500달러가 넘는 관광수입이 떨어진다.
▶만리장성엔 중국 4대 설화, 맹강녀 이야기가 있다. 맹강녀가 성 쌓는 데 끌려간 남편에게 솜옷을 주러 왔다가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에 통곡했다. 순식간에 800리 장성이 무너지고 그 속에서 남편의 호미가 나왔다. 만리장성을 쌓느라 희생된 사람도 그렇게 많았다. 그러나 문화혁명 때 문화재 파괴에 혈안이던 공산당도 만리장성은 손대지 못했다. 중국은 올해 만리장성 보호 10년 계획을 시작했다. '장성보호조례'도 만든다.
▶노무현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만리장성과 피라미드는 결국 전쟁으로, 억압과 착취의 결과물로 쌓은, 남의 고통을 담보로 한 부도덕한 유적"이라고 말했다. 사막을 녹지로 가꾼 두바이의 '녹색 기적'에 찬사를 보내면서 대비(對比)해 강조하려는 말 같다. 인류 문화유산과 관광자원 중에 독재와 학정(虐政)의 산물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만리장성과 피라미드를 아끼고 자랑스러워하는 그 나라 사람들과 세계인에게 달가운 말은 아닐 것이다.
▶신도시는 어떤 면에서 현대판 만리장성과 피라미드다. '왕자의 성공'을 뜻하는 푸트라자야는 1995년 당시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가 80억달러를 들여 짓기 시작한 신행정도시다. 노 대통령은 작년 12월 이곳을 방문해 "국민은 푸트라자야 건설을 성공이라고 보느냐"고 물었다. 행정중심복합도시를 밀어붙인 노 대통령으로선 궁금한 대목이었을 것이다. 인류 유적이 부도덕하다고 말하는 것은, 신도시를 두고 도덕적이냐 아니냐 따지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주용중 논설위원 midwa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