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스산맥 위 해발 3600m. 중남미 볼리비아의 행정수도 라파스에는 요즘 관광객뿐만 아니라 새로운 방문객들이 몰려든다. 세계 각지에서 온 다큐멘터리 제작자와 기자들. 숨이 가쁘고 머리가 어찔한 고산병 증세에도 불구하고 향하는 곳은 같다. 남미의 새로운 혁명 지도자로 떠오른 에보 모랄레스(47) 대통령 궁이다.

"그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새 역사를 쓸 겁니다." '사회주의를 향한 운동'(MAS)이란 이름의 집권당 당원 이반 베리코(38)씨는 지구 반대편, 'LG'와 '삼성'의 나라에서도 관심을 보이는 데 대해 신이 난 듯했다. 사상 첫 인디오 원주민 출신 대통령의 앞길을 확신한다는 표정이다.

새 지도자의 야심 찬 '역사 바로 세우기' 사업은 이미 시작됐다. 지난 1일 가스국유화 조치에 이어 9일 토지개혁 방안이 발표됐다. '500년 식민시대를 청산하고 소외된 원주민을 복권시키는 새 헌법'을 만들겠다는 공약에 따라 오는 7월 10일 제헌의회 선거를 거쳐 8월 6일 독립기념일에 맞춰 헌법제정 작업을 출범시킬 기세다. 자신의 구상대로 헌법을 만들기 위해서는 전체 국민의 62%인 인디오 외에 백인과의 혼혈인 메스티조들도 끌어들여야 한다. 주민등록과는 담쌓고 살아온 산간벽지 주민들에게도 등록을 무료 지원하는 등 '유효표'를 늘리는 데 여념이 없다.

하지만 취임 6개월째 대통령을 바라보는 안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라파스에서 만난 로베르토 무스타파 볼리비아 기업연합회장은 "(대통령이) 국유화 선언으로 스스로 함정을 파고 있다"며 "외국기업들이 투자를 기피할까 봐 두렵다"고 말했다. 정부 자문역을 지낸 마르코 안토니오씨는 "정부 내에도 투자 위축의 우려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국가정책 이면에 깔린 정치적 계산을 지적하는 이도 있다. 엔리케 마리아카 빌바오 전 동력자원부 장관은 "1937년과 1969년에도 자원국유화 조치가 있었지만, 이번처럼 요란한 방식은 정치적 효과를 염두에 두었다고밖에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새 정치세력의 참신성을 인정하는 지식인들도 급진성과 아마추어리즘에 대해서는 우려를 거두지 않는다. 최근 국립대 교수 월급 감봉 파동이 단적인 예. 대통령이 취임 4일 만에 자기 월급을 절반 이상 깎자, 3부 요인과 국립대 교수까지 차례로 감봉됐다. 교수들의 불만이 들끓는 중에 난감해진 총장은 지난주 슬그머니 사표를 냈다. "전문성과 신분보장이 중시돼야 할 분야까지 인기몰이에 휩쓸려야 되겠습니까?" 라미로 오떼로 루게네스(74) 전 국립 라파스대 법대학장은 "특히 국제 관계가 걱정"이라며 "지정학상 대외 개방과 국제화가 숙명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관리할 인물이 안 보인다"고 말했다.

역량 부족은 또 다른 외세에 의존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가스국유화의 주무기관인 볼리비아 국영에너지회사(YPFB)부터가 베네수엘라 국영에너지회사(PDVSA)와 러시아의 가즈프롬 측 전문가들의 협력이 필요한 형편이다. 이곳 유력지 라프렌사의 칼럼니스트인 카를로스 모랄레스는 "베네수엘라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는 점은 우려할 만한 일"이라고 했다. 라미로 전 학장은 "결국 정치가 경제를 흔든다는 점이 문제"라며 "남미에서 칠레가 성공 모델이 된 것은 좌파 정부이면서도 좌파 같지 않게, 경제를 정치보다 앞세웠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라파스=전병근 특파원 bkjeo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