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경기도 수원시 인계동 경기문화재단 3층 연습실. 'G선상의 아리아'가 고운 선율로 울려퍼지고 있었다.

"5일 밖에 안 남았어요, 이거 연습 아니고 연주입니다. 정신 바짝 차리세요."

지휘자의 훈계에 주부들의 어깨가 움츠러든다. 그 순간 어디선가 튀어나온 '띠리링~' 삑사리. "호호, 깔깔깔" 특유의 '아줌마' 웃음소리가 뒤따라 터져 나왔다. 5분동안 3번 야단맞고 같은 소절을 내리 반복해도 연신 '호호, 까르르'다. 짜증 한 번 안내는 유쾌한 연주자들은 아마추어 연주단체 '수원 사계앙상블'의 주부 단원 37명. 오는 16일 수원청소년문화센터에서 '장애인돕기 자선음악회' 공연을 앞두고 막바지 점검중이었으나 완벽(?)을 확인하기에는 시간이 모자란 듯 보였다.

맨 앞에서 만돌린을 퉁기던 조정숙(60)씨는 "공연이 얼마 안 남아서인지 자꾸 손가락이 떨려 죽겠다"며 "그래도 아줌마들끼리 하하호호 연습하니 즐겁다"고 했다.

수원사계앙상블이 꾸려진 건 지난 2003년 11월 11일. 수원시 음악협회에서 만돌린을 취미로 배우던 조유진(49·단장)씨, 박금순(52)씨, 서영자(53)씨, 윤종분(42)씨 등 14명이 따로 뭉쳐 합주반을 만들었다. 본격적으로 아줌마들끼리 신나는 공연 한 번 해보자는 취지였다. 여기에 "사계절을 따라 자연이 변화하듯 아름다운 음악을 하자"는 뜻에서 김정환(48·지휘·서일대 교수)씨가 이름을 이렇게 붙였다. 2년 남짓 해를 넘기며 자선음악회, 정기연주회 등 19회 공연을 거쳤고, 단원도 갑절로 늘어났다. 만돌린 14명, 만돌라 6명, 만도첼로 4명, 기타 11명, 콘트라베이스 2명. 34세부터 63세까지 연령층도 다양하다.

지난 해 '평화의 모후원'돕기 자선음악회를 잊을 수 없다는 안향순(49)씨는 "공연을 보러온 독거노인이나 장애인분들이 대장금 '오나라' 연주에 맞춰 춤도 추고 즐거워하는 걸 볼 때 마다 우리도 신이 난다"고 했다. 해마다 한 차례씩 자선음악회에서는 300만~500만원씩을 모금해 복지관에 기부도 한다. 주로 베토벤의 소나티네,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 등 클래식, 닥터지바고 '라라의 테마' 등 영화·뮤지컬 OST와 민요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12~13곡씩 섭렵한다. 유준숙(콘트라베이스·46)씨는 "정통 클래식뿐 아니라 편곡해서 듣는 사람들도 흥겹고 우리도 재미나게 연주한다"며 "대장금 '오나라'는 원곡보다 훨씬 장엄하고 감동적이라는 평을 듣는다"고 말했다.

16일 자선음악회 공연을 앞두고 맹연습중인 주부 아마추어 연주단체 ‘수원사계앙상블’. 〈뒷줄 왼쪽부터〉김금자 이명자 김금자 정마리아 임은숙 김영숙 임학순 노사남 윤종분 이선미 장춘옥 박경자 최정숙 김정환(지휘자), 〈가운뎃줄 왼쪽부터〉 유준숙 조유진 박승미 서금옥 유미영 한미혜 고현주 배민경 남필순 이을숙 안향순 서영자 서정순 노지현 이은주, 〈앞줄 왼쪽부터〉 박금순 김미자 장영희 조정숙 함정옥 황원자 홍명숙.

자선음악회 외에 가을마다 여는 정기연주회에는 가족들도 초청한다. 이을숙(만돌라·52)씨는 "처음엔 뭐 그런걸 하느냐던 남편이 연주회 보고나선 상당히 뿌듯해했다"며 "아이들도 덩달아 클래식 음악을 흥얼거리고 있다. 자녀 교육에도 좋다"고 했다. 오는 7월에는 경기도 자매도시인 일본 규슈 미야자키현(宮崎縣)에 수원시 대표로 해외공연도 간단다.

프로 못지 않은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이들이지만, 처음에는 주2회 연습시간이 빠듯해 힘들었다고 한다. 2004년 12월 입단한 한미혜(41)씨도 악보만 겨우 볼 줄 아는 정도에서 시작했다.

"집안일 제치고 매일 이래도 되나 싶어 망설였어요. 지금은 가족들도 지지하고 함께 연습하는 '형님들'도 잘 챙겨주니까 주변에도 많이 권유하고 있지요."

주부 오케스트라의 장점을 묻자 "하루하루 늘어가는 실력에 자신감도 생기고 덕분에 집안에서 잔소리도 줄었다"고 입을 모은다. 완전 초보라도 누구나 들어올 수 있다는 것도 '사계'만의 특징. 만돌린·만돌라·만도첼로·기타까지 14년차 경력의 조유진 단장이 3개월은 직접 무료 강습도 해준다. 한국음악치료연구소 윤태원(54)소장은 "주부들이 아내·엄마의 역할에 얽매여있기보다 이처럼 대외 활동을 통해 나도 해냈다는 성취감을 얻을 수 있다. 주부 우울증과 40~50대 갱년기 기억력 감퇴도 치료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내에는 이외에도 주부들이 참여할 수 있는 '분당 민트오케스트라' '시흥 HB앙상블소사이어티' '수원레이디스오케스트라'등 여성아마추어 연주단체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