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인들에게 월드컵 출전은 전혀 당연한 일이 아니다. 지난 40년간 스위스는 월드컵에 단 세 차례 출전했을 뿐이다. 그런 만큼 터키와의 플레이오프에서 마지막 고비를 넘겼을 때 스위스 팬들의 열기는 믿기 힘들 정도로 뜨거웠다.
월드컵이 다가올수록 스위스가 독일월드컵에서 최대의 이변을 일으킬 능력이 있다는 찬사를 듣는다. 하지만 스위스는 자만감 대신 현실적인 목표로 16강 진출을 삼고 있다. 주변의 기대가 클수록 사람들은 2005년 세계청소년선수권의 아픈 기억을 떠올린다. 이 대회에는 현 대표팀의 주전이기도 한 수비수 필립 센데로스(아스날)와 공격수 요한 폰란텐(NAC 브레다)을 포함한 화려한 멤버가 출전했다.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혔던 스위스는 조별 리그도 통과하지 못한 채 탈락했다.
스위스 축구가 도약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 이후다.
스위스 축구협회는 15~20세의 유망주 육성 프로그램을 수립하고, 전담 지도자를 배치했다. 또 4·4·2 시스템을 모든 연령별 팀에 통일적으로 사용했다. 스위스의 어린 선수들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기본기를 착실히 다졌으며, 해외 클럽으로 속속 진출했다. 이들은 뛰어난 기량에 비해 몸값이 상대적으로 싸 해외 클럽 진출이 쉽게 이뤄졌다. 야코프 쾨비 쿤 감독은 2002년 대표팀 감독으로 발탁될 때까지 청소년대표팀 감독을 맡는 등 이 유망주 육성 프로그램에 깊숙이 간여한 인물이다. 겸손하고 출중한 지도력으로 사랑받는 쿤 감독은 선수로서도 1960년대와 1970년대 스위스 리그에서 가장 성공적인 미드필더였다.
그는 개인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들을 과감하게 배제하고 젊은 선수들을 중심으로 강력한 팀워크를 바탕으로 한 대표팀을 만들어냈다. 스위스는 2004 유럽선수권에 이어 2006년 월드컵 본선에 잇달아 진출하면서 함께 성장한 팀이다.
선수들 가운데는 AC 밀란에서 뛰는 요한 포겔이 팀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 이영표·박지성과 함께 네덜란드 에인트호벤에서도 뛰었던 포겔은 경기의 흐름을 안정되게 이끄는 탁월한 미드필더다. 포겔은 1996년 유럽축구선수권을 통해 스타로 발돋움한 뒤 스위스 축구의 간판 선수로 성장했다.
포겔을 포함한 현 대표팀의 시선은 2008년 스위스와 오스트리아가 공동 개최하는 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 맞춰져 있다. 스위스는 이 대회에서 최소한 4강에 오를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 큰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에서 열리는 2006 독일월드컵. 스위스인들은 기대와 함께 조심스러운 자세다. 스위스가 조별리그를 통과하면 16강전 상대는 스페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스위스는 가장 최근 출전했던 1994년 미국월드컵 16강전에서 스페인에 0대3 완패를 당한 쓰라린 기억을 갖고 있다. 스위스 팬들은 한국처럼 지난 대회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이다.
(슈테판 벤야민·스위스 노이에 취르허 차이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