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을 보면 그 지역의 특징을 간파할 수 있다. 벌교(筏橋)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벌교는 행정구역상으로는 전남 보성군 벌교읍. 일제시기부터 1960년대까지 '영화(榮華)'를 간직했던 곳으로 근자에는 소설 '태백산맥'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으면서 다시 일어서고 있다.
너무도 잘 알려진 '태백산맥'의 한 구절을 인용해보자.
"벌교는 한 마디로 일인(日人)들에 의해서 구성, 개발된 읍이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벌교는 낙안고을을 떠받치고 있는 낙안벌의 끝에 꼬리처럼 매달려 있는 갯가 빈촌에 불과했다. 그런데 일인들이 전라남도 내륙지방의 수탈을 목적으로 벌교를 집중 개발시킨 것이었다. …. 모든 교통의 요지가 그러하듯이 벌교에는 제법 짱짱한 주먹패가 생겨났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벌교 가서 돈자랑, 주먹자랑 하지 말라'는 말이 '순천에 가서 인물자랑 하지 말고, 여수에 가서 멋자랑 하지 말라'는 말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처럼 일인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직전, 벌교는 낙안벌 끝에 달린 갯마을이었다. 이 갯마을을 관통하며 바다로 이어지는 하천의 양쪽에 모여 살았다.
하천 양쪽에 사는 사람들의 교통에는 다리가 필수적이었다. 그래서 이 천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여럿 있다. 소설 속에 나오는 '소화다리'와 그 옆에 새로 지어 놓은 다리, 보물로 지정된 홍교(虹橋), 근년에 지어진 봉림교, 벌교천 가장 아래쪽 다리 등이다. 역사가 가장 오랜 것은 무지개(虹)와 같다 해서 이름이 붙여진 홍교.
이 홍교의 역사를 알게 해주는 비들이 홍교 옆에 7기가 서 있다. 벌교사람들이 다리를 소중하게 여겨왔다는 산 증거이기도 하다. 1737년(영조13년) 끊어진 다리를 다시 놓으며 세운 가장 오래된 비에는 다음의 구절이 보인다.
"불가에는 널리 구제한다는 가르침이 있다. 초안(선사)과 스님 성습이 낙안의 큰 하천에 다리를 놓았으나 오래되어 다리가 무너졌다. (그 뒤를 이은 또 다른) 선사가 낙안에 사는 여섯 사람과 함께 초안선사의 뜻을 따랐다.(다리를 중수했다)"
홍교는 중수를 거듭하면서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떼(뗏목)로 만든 다리'라는 '벌교'는 분명 홍교 이전의 단계일 것이다. 벌교의 옛 모습이 떠올려지는 대목이다.
한편으로 불교에선 다리의 의미가 깊다. 현실세계와 피안정토의 경계이자 두 영역을 연결시켜주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홍교를 처음 세운 선사의 뜻 역시 다리로서 세상사람들을 불교의 세계와 연결시키고자 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