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방송·통신에 큰 영향을 미쳤던 미국의 '개정 통신법'(Telecommunication Act of 1996)이 나온 지 올해로 10년이다. 미국에선 10년을 맞아 이 법에 대한 평가와 논쟁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논쟁의 핵심은 "규제완화(deregulation)와 경쟁(competition)으로 '소비자의 이익'이 얼마나 실현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비용의 감소와 선택 기회 증대로 소비자들에게 혜택을 주었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소수 지배적 통신사업자들이 끼리끼리 전략적으로 제휴하는 경쟁적 데탕트(detente)체제를 만들었다"는 비판도 있다. 실제 미국에선 버라이존/MCI와 SBC/AT&T를 포함한 4개 업체가 통신시장의 72.5%를 차지하고 있고, 케이블TV시장은 컴캐스트와 타임-워너를 비롯한 4개 회사가 60.8%를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서로 다른 통신과 방송 등의 '네트워크 융합'은 소비자에게 이익을 가져다 주었는가. 이의 성공 여부는 결국 소비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콘텐츠가 얼마나 다양해졌는가에 달려있다. 애초에 많은 이들은 네트워크 융합을 통해 커뮤니케이션 산업이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했다. '텔레커뮤니케이션' 3월호가 방송통신 융합 서비스인 전 세계 IP-TV(인터넷 프로토콜TV) 사업자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는 흥미롭다. "IP-TV사업을 수행하는 데 가장 큰 관심사"를 묻는 질문에, 44%가 "실질적이고 이익이 되는 사업을 만드는 것"이라고 응답했다. 수많은 방송국이 생겨났지만, '실제로 돈이 되는' 사업을 만들지는 못하고 있고, 소비자(시청자)들도 여전히 다양한 볼거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다양한 프로그램을 창출하고 시청자의 선택권을 증대시키기 위해 '역설적으로' 정부가 시장에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할 것이라는 전망도 미국에서는 나오고 있다.
하지만, 경쟁체제를 도입해 영상산업을 활성화하려는 미국의 정책은 위성방송, 위성DMB, IP-TV 같은 새로운 매체로부터 지상파 방송사의 기득권을 보호해주는 법 체계를 고수하고 있는 우리나라보다는 낫다고 생각된다. 한국에선 그나마 별로 많지도 않은 영상 콘텐츠를 인터넷 홈페이지와 포털사이트로 유통시키려는 사업마저 방송법이란 낡은 틀로 규제하려 하고 있다. 한국에는 지상파 방송이라는 독점 사업자가 존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말로만 외치는 '영상 콘텐츠 산업 활성화'가 얼마나 실현될지 의문이다. 한국에 경쟁체제가 도입되려면 이런 낡은 틀부터 사라져야 한다.
(황근·선문대학교 언론광고학부 교수=미국 텍사스大 교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