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아빠랑 '펠×××' 해봤어?"

외국계 기업에 다니는 배혜정(가명·43)씨는 얼마 전 고1 딸이 '구강성교'를 뜻하는 단어를 서슴지않고 말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런 말은 어디서 들었느냐"고 다그치자, 아이는 소설책을 내밀었다.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2005년 올해의 책'이라는 문구가 적힌 '사립학교 아이들'이란 책이었다. 딸이 피식 웃었다. "뭘 그런 걸 갖고 놀라요? 그것도 모르는 애들이 어디 있다고?"

◆性, 내가 누려야 할 당당한 권리

10대들이 성(性)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기 시작했다. 부모 몰래 성인용 잡지를 뒤지는 수준이 아니라, 성을 자신이 누려야 할 당당한 '권리'로 인식하고 표현하는 것이다.

청소년을 위한 내일여성센터 김영란 소장은 "요즘 청소년의 성에 관한 지식은 상상을 초월한다. 대개 5년 주기로 상담 내용 변화가 두드러지는데 요즘은 성 테크닉, 임신 걱정 같은 성 행위 자체에 관한 상담이 가장 많다"고 말했다.

청소년들의 고민 패턴을 보면, '자위행위'에 대한 상담은 2000년 681건에서 2004년 391건으로 줄어든 반면, '성관계, 생식기 기능 등 구체적인 성 지식'에 관한 상담은 601건에서 915건으로 늘었다. 임신과 낙태에 관한 상담 역시 273건에서 480건으로 늘었고, 동성애에 관한 상담도 25건에서 39건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성에 대한 고민이 '골방형'이 아니라, '관계형'으로 바뀐 것이다.

조선일보가 서울시내 중·고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 및 면접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2.9%가 '거의 매일', 31.4%는 '일주일에 한두 번' 성에 관해 친구들과 이야기한다고 답했다. '영화나 TV에서 성애 장면이 나오면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에도 '자연스럽다'(51.4%)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성 관계 묘사 외에는 괜찮다'(7.1%)고 답한 10대들도 있었다.

◆성? 불량 청소년 전유물 아니다

성에 대한 관념이 달라지면서, 대중문화는 이들의 욕망을 그대로 문화상품에 투영하고 있다. 고3 남학생의 성장통을 그린 영화 '피터팬의 공식'에서 주인공 한수는 옆집에 사는 음악교사를 향해 "자위시켜주세요!"라고 말하고, 6월 개봉을 앞둔 '다세포 소녀'는 원조교제부터 동성애까지 10대 성에 관한 민감한 이슈를 과감하게 다룬다. 남자 중학생들의 성적 호기심을 정면으로 다룬 '몽정기'(2002년)로 시작, 여고생들의 성적 욕망을 다룬 '몽정기2'(2005), 청소년 임신을 다룬 '제니와 주노'(2005)까지 영화 속 아이들은 일탈 청소년이 아닌 평범한 아이들이다. 청소년이 즐겨 듣는 시간인 밤 10시부터 방송되는 MBC FM의 '펀펀 라디오'의 '눈을 떠요' 코너는 '여자친구와 더 키스를 잘하고 싶다' '남자친구의 스킨십 요구가 너무 지나치다'는 질문을 두고 진행자들이 '노하우'를 전수해준다.

청소년 문학도 이를 놓치지 않는다. 미국 명문 사립고교생들의 정신적·육체적 사랑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사립학교 아이들'은 한국에 출간된 지 2주일 만에 3쇄를 찍을 정도로 10대, 20대의 반응이 폭발적이다. 창작소설 '나'는 성인문학에서조차 금기로 분류되는 '동성애'를 정면으로 다뤘다.

◆우리나라 성교육, 너무 '후져요'

청소년들은 현실을 따라잡지 못하는 성교육에 대한 불만도 드러낸다. 학교 성교육의 효율에 대해 설문조사 응답자들의 77.1%는 '학교 성교육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중학교 3학년 조민희(가명·16)양은 "섹스 하면 임신한다는 식의 협박성 결론뿐이라 하품만 나온다"고 말했다. 이명화 아하청소년 성문화센터 소장은 "청소년보호법보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성교육이 더 중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이 기사 작성에는 방희경(동국대 신방과)·윤서현(중앙대 영문과) 인턴기자가 참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