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계열사 비자금의 '저수지'였던 글로비스 비밀금고의 입출금 내역을 보면 비자금 중 상당액이 정치권에 제공됐음을 알 수 있다. 검찰도 정몽구(鄭夢九) 회장의 구속영장에 "비자금이 불법 정치자금 등 명목으로 사용됐다"고 명시했다. 특히 대통령선거가 치러진 2002년도에는 비자금 조성 규모와 사용 액수가 다른 해를 압도했다. 대통령선거 직후에도 비자금이 수억원씩 뭉텅이로 비밀금고를 빠져나갔다.

◆대선 기간에 집중된 비자금

글로비스가 현대모비스와 기아차 등 계열사로부터 비자금을 걷은 것은 2000년 4월부터 검찰 수사 직전이었던 지난달 24일까지 만 6년간이었다. 이 기간 금고에 들어온 비자금은 682억원이며 나간 돈은 623억원이었다.

'금고지기'가 가장 바빴을 때는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가 겹쳤던 2002년. 그해 조성한 비자금은 311억원으로 6년간 만들었던 682억원의 절반에 육박했다. 집행된 돈 역시 246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특히 대통령선거 직전이었던 9~12월 4개월간 비자금 조성과 사용이 집중됐다. 평소 한 달에 3~4차례 정도 들어왔던 비자금이 2002년 10월, 11월에만 각각 13차례, 9차례가 입고(入庫)됐다. 한 번에 유입된 금액도 5억~15억원으로 평소보다 많았다.

이 기간 비자금 사용 또한 엄청났다. 11월 57억원, 12월 41억원 등 대선 전 4개월간 170여억원이 지출됐다. 2005년 1년간 사용된 비자금 22억원의 8배에 달했다. 한 번에 20억원 이상의 거액이 인출된 적도 네 번이 있었다. 당시 대선국면은 노무현(盧武鉉)-이회창(李會昌)-정몽준(鄭夢準) 후보 간의 치열한 3파전이 벌어졌다.

◆대선 이후에도 거액 인출

특히 대통령선거 직전인 12월 12일과 13일 20억원과 3억원이 빠져나간 뒤 일주일간 잠잠했던 비자금 지출은 대통령선거(12월 19일) 직후 다시 빈번해졌다. 12월 20일과 21일에 각각 6억원이, 23일에 4억원이 인출되는 등 10여일간 18억원이 사용됐다. 그 다음달에도 15억8800만원이 지출됐다. 대통령선거가 끝난 이후 거액의 자금이 금고에서 빠져나간 점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한나라당도 최근 "글로비스 금고에 남아있던 비자금은 대선자금으로 쓰고 남은 돈"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비자금 조성 액수는 2002년 311억원에서 2003년 52억원으로 줄었으며, 2004년부터는 전혀 만들어지지 않았다.

한편 검찰이 비자금 용처(用處) 수사에 본격 나설 방침이어서 이 사건이 '대선자금 사건'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