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마(李濟馬)의 사상인론(四象人論)으로 보면, 일본인은 대개 소음인(少陰人)이다. 이들은 질박할 만큼 전형적인 소음인 성향을 보인다. 섬에서 살아온 탓에 타 체질과의 마찰 속에서 다듬어질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소음인은 외유내강형의 지자(智者)로서 위계(位階)감각, 수리감각, 기교가 뛰어나고 내 것을 챙기는 실속파다. 전통과 권위(힘)를 숭상한다. 반면, 탐욕적이고 융통성 없고 자의적으로 전횡하는 변덕쟁이며 엽기적이고 잔학하다.
일본의 이 소음인 특성은 역사가 증언한다. 주목할 것은,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일본의 '뛰어난 위계감각'이다. 일본은 자국이 약하고 타국이 강할 때는 타국을 섬기지만 반대 상황에서는 항상 타국을 도발했다. 일본은 19세기말 양이(攘夷)를 외치다가 함포에 혼난 후에는 구미(歐美)에 납작 엎드렸으나, 20세기 들어 강국이 되자 구미를 공격했다. 패전 후 일본은 다시 납작 엎드려 미국을 받들고 주변국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전후 경제를 재건하자 주변국을 넘보며 힘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국민총생산은 한국과 중국을 합친 것의 2배이고, 1인당 소득은 중국의 약 30배, 한국의 2.5배다. 일본은 이를 믿고 전횡할 뿐, 베풀 줄 모른다.
일본의 도발은 '약자에게 강한' 소음인 강자의 위계적 '전횡'인 것이다. 더욱 놀랄 만한 것은, 이 도발이 소음인적 변덕을 자극하는 경기변동과도 정밀하게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힘을 느끼는 호경기에 도발하고, 쪼들리는 불황기에 이를 반성하는 행태를 반복해 왔다. 일본은 1970~80년대 번영기에 들어서자 집중적으로 도발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1991~95년 불황기에는 총리의 신사참배 거부, 교과서 자진 수정, 법원의 신사참배 위헌선고 등 일련의 반성이 있었다. 이후에도 같은 패턴은 반복되었다. 1996년 일시적 경기회복과 도발, 1997~98년 불황 속에서 총리의 신사참배 거부 표명, 1999~2000년 경기회복과 잦은 도발, 2001~02년 불황과 일부 교과서 자진 수정 등. 이러다가 2003년부터 경기가 본격 회복되자 총리의 신사참배와 각종 도발이 연방 터져 나왔다. 작년에는 독도영공 침입 기도와 시마네현(縣)의 '다케시마의 날' 제정사건이 터졌고 지난주에는 독도수역 측량강행 시도가 있었다.
국력추이와 경기변동을 세심하게 반영하는 일본의 도발 패턴은 너무나도 소음인적이다. 이 분석이 맞는다면 이를 퇴치할 길도 자명하다. 우리 경제가 일본을 앞지른다면, 일본은 전성기 조선시대처럼 한국을 받들 것이다. 골드만삭스사는 한국이 5% 성장률을 유지할 경우 2025년 국민소득 세계 3위, 2050년에는 세계 2위로서 일본을 앞지를 것으로 전망한다. 일부 일본인들은 이미 한류(韓流)에 젖기 시작했다. 따라서 일본경제를 앞지르기 전에라도 한류가 더욱 확산된다면 도발이 마침내 끝날 날이 올 것이다.
이날을 앞당기려면 5% 성장률을 유지하고, 정확한 눈대중과 '은근과 끈기'의 실무외교로 도발을 잘 처리해 한류를 키워야 한다. 그러나 현 정권은 경제도 대일외교도 다 어렵게 만들고 있다. 천황은커녕 총리도 나서지 않는 일개 현(縣)과 장·차관 수준의 독도 도발에 국가원수가 언성을 높이는 것은 '참새를 대포로 쏘는' 격이라서 실속 없고 위험하다. "각박한 외교전쟁", "국수주의 정부의 공세적 도발" 등 국가원수의 속풀이 발언도 독도를 '국제문제화'하려는 일본의 작전을 도와줄 뿐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독일에서 독일의 우방인 일본을 비난하고, 일본 총리와 '입씨름'을 반복하고, '평화를 빌러' 야스쿠니에 간다고 둘러대는 고이즈미 총리처럼 '신사참배 반대 이유를 알리러' 야스쿠니를 방문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거친 외교도 일본의 반한(反韓) 감정을 자극하고 '극일(克日)의 불씨'인 한류를 냉각시켜 '도발이 끝날 날'을 멀게만 만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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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연 동국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