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중양 교수는“전통과학을 자랑거리로만 접근하지 말고 당시 시대와의 관계 속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했다.

"우리 전통과학을 탁월하다고 부각시키는 것 또한 하나의 역사 왜곡입니다."

사람들이 철석(鐵石)같이 믿는 상식을 깨뜨리는 행위는 위험한 일이다. 믿음이 깨지려는 순간 사람들은 거부감을 넘어 적대감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지난해 2월 이학박사(과학사 전공)로는 처음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가 돼 화제를 모았던 문중양(44) 교수는 자신의 첫 대중서 '우리역사 과학기행'(동아시아·1만3000원)을 통해 우리의 단단한 상식을 여지없이 깨뜨린다.

"대중강연을 통해 우리 전통과학의 실제 모습을 이야기하면 충격적으로 받아들이거나 거부감을 나타내는 분들이 많아요."

문 교수는 전통과학을 자랑거리로만 접근하는 것은 비(非)역사적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먼저 첨성대를 예로 들었다. 첨성대는 신라 선덕여왕(632~647년)때 만들어진 동양 최고의 천문대이며 우리 조상의 천문 관측 수준이 높았음을 알려주는 구조물이란 게 우리의 상식. 하지만 그는 첨성대가 불교의 우주관인 '수미산(須彌山)'을 나타내거나 토속신앙의 제단(祭壇) 역할을 했다는 설(說)에 무게를 둔다. 첨성대는 '별(星)을 바라보는(瞻) 구조물(臺)'이라는 이름을 가졌는데도 천문기구가 아니란 말인가? 문 교수는 전통시대 '천문(天文)'의 뜻이 오늘날과는 다르다고 대답했다. 첨성대는 '별을 관측하는' 천문대가 아니라 '하늘의 뜻을 물어보는' 천문대였다는 설명이다.

"전통과학과 근대과학은 패러다임이 다릅니다. 우리 과학 유산이 우수하냐 여부를 묻는 것은 수준 이하의 질문입니다. 시대가 어떤 과학을 원했는지, 그 시대의 과학적 원리는 무엇이었는지를 밝히는 것이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일이죠."

조선시대 과학에 대한 이야기는 더 충격적이다. 그는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 세종시대의 과학이 이후 계승되지 못하고 쇠퇴했다는 상식 역시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선 세종대의 과학이 당대 최고 수준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 세종대에 만든 세계 유일의 오목형 해시계인 앙부일구(仰釜日晷)는 원나라 과학자 곽수경의 '앙의(仰儀)'를 모델로 만든 것이고, 둘 중 어느 것이 더 우수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세종시대 이후 과학기술이 쇠퇴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허준의 '동의보감'은 초보적인 세종대의 의학보다 훨씬 발전한 것이고,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보면 알 수 있듯 지리학도 놀랍게 발전했다. 농업기술 등 다른 과학들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전통과학이 발전을 거듭했는데 왜 서양 근대과학에 결국 뒤지고 말았을까? 만일 당신이 조선의 비운(悲運)에 비분강개하는 사람이라면 문 교수의 다음과 같은 대답은 만족스럽지 못할지도 모른다.

"어느 회사의 휴대전화 기술이 좋은가라는 요즘 시각으로 보아선 안 돼요. 그런 관점은 역사학자의 것이 아닙니다. 당시는 전통과학과 서양근대과학이 경쟁하는 시대가 아니었어요. 조선은 17~18세기에도 시대가 요구하는 과학기술을 잘 제시하고 만들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