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유럽인들에게 가장 사랑 받은 동양의 춤은 일본의 부토(舞蹈)였죠. 하지만 불행히도 부토는 이제 유럽인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있어요. 판소리는 전혀 새로운 장르이기에 유럽인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고 봅니다."

한국 예술에 대한 인사치레의 말로만 여기기엔, 이 사람이 맡고 있는 직함의 무게가 너무 컸다. '유럽최고의 무용 전문 극장'으로 꼽히는 프랑스 리옹의 '메종 드 라 당스'(무용의 집)의 총감독 기 다르메(59)씨. 세계적 수준의 단체만 선별해서 올리는 이 '꿈의 무대'에 지난 12~14일 사흘간 창무회(이사장 김매자)의 '심청'을 올린 사람이 바로 다르메 총감독이다.

다르메씨는 "2000년 한국 방문 때, 전통 무용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심청'을 처음 본 뒤 특히 판소리에 깊은 감명을 받아, 판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추는 '심청'을 적극 추천했다"고 말했다. 그는 "무용은 삶을 바라보는 자세를 몸으로 표현하는 예술"이라며 "한국의 창무회는 이사장부터 단원까지 같은 철학을 공유하고 있었고 생활 양식도 비슷한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가령 파리 오페라단이나 리옹 발레단엔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무용수들이 모여 있지만 "자라온 환경이나 철학이 달라 심하게 말하면 단지 수당 받고 춤을 추는 봉급자일 뿐"이며,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김매자와 단원들은 아주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고 그것이 상호작용하며 춤의 수준을 승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심청'을 프랑스 무대에 초청한 까닭이 결코 먼 나라 전통 무용에 대한 이국(異國) 취미가 아니라면서 "앞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각국의 무용단을 적극적으로 발굴하는 것이 우리 극장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다르메씨는 특이하게도 지역 신문 기자 출신이다.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발레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1974~79년 동안 공연·영화·연극·무용에 대한 기사를 주로 썼고, 월간 '매거진 내셔널 댄스' 편집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1980년 이 극장 설립부터 지금까지 총감독을 맡으면서 프랑스 리옹을 '유럽 무용의 수도'로 만든 주역이다. 1984년부터 '리옹 댄스 비엔날레'를 통해 세계 각국의 춤을 소개하며 프랑스 현대 무용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고, 1999년엔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종도뇌르 훈장을 받기까지 했다.

다르메씨는 "올 시즌 191개 작품의 공연 내용을 알리는 소책자만 14만부 가까이 나갔으며, 이 책의 두 페이지에 걸쳐 '심청'을 자세하게 소개했다. 우리가 이 작품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프랑스 사람들이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심청' 공연 첫날 1050석 가운데 예매를 통한 판매분만 700석이 넘었다. 그는 "세계화에 따라 모든 나라가 비슷해져 가는 것 같지만, 문화는 전혀 그렇지 않다"며 "전통과 현대적 감각을 어떻게 조화시켜 나갈지가 우리 모두의 과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