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권신아

관중석은 거의 찼다. 나는 티켓에 지정된 자리를 찾아 앉았다. 코트가 멀찌감치 내려다보였다. 아주 높은 자리가 아니었음에도 이상하게 시야가 빙글빙글 돌았다. 내 옆자리는 비어있었다. 나는 프로농구에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왔다. 이것은 나에게 파란 옷을 입은 팀과, 흰 옷을 입은 팀의 경기일 뿐이다. 그러나 실내의 모든 사람들은 반으로 나뉘어 각각의 팀을 응원하기 위해 여기 모인 것 같았다. 그들과 나는 서로에게 이방인이었다.

흰 옷이 쏜 중거리 슛이 바스켓에 깨끗하게 내리꽂혔다. 흰 풍선을 든 관중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그때, 비어있던 내 옆자리에 한 남자가 조용히 들어와 앉았다. 눈이 안 보이도록 모자를 깊게 눌러 쓰고 진회색의 점퍼를 입은 그 남자. 늘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던 평소 차림새와는 사뭇 달랐지만, 무슨 옷을 입는대도 나는 그를 단숨에 알아볼 수 있었다. 내가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그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냥 농구 봐요. 내 얼굴, 보지 말아요."

그 음성은 작았고 콱 잠겨 있었다. 나도 모르게 코끝이 맹맹해졌다. 그가 시키는 대로 나는 그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농구 코트에서 두 눈을 떼지 않았다. 심판이 반칙을 선언했다. 흰 옷이 거칠게 항의했다. 그와 나는, 어깨를 맞댄 채 나란히 앉아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 체육관을 가득 메운 수많은 타인들과 함께.

"그때 은수씨가 나한테 물었던 거…… 늦었지만, 지금 대답할게요."

세상에는 듣기 싫어도 반드시 들어야만 하는 고백이 있을 것이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정말 미안해요. …… 나, 은수씨와, 결혼할 수 없어요."

파란 옷이 쏜 첫 번째 자유투가 링을 맞고 튕겨나갔다.

"은수씨를 영원히 만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그럴 자격이 없는 놈이니까. 아니, 사실은 은수씨한테 이 상황을 이해해달라고 말하는 게 너무 두려웠나 봐요."

"……."

"그런데 이젠 고백이라는 게 꼭 사람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하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두번째 자유투가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며 골대로 날아갔다.

"재미없는 얘기일 테지만 잠깐만 들어줄래요?"

수직으로 낙하하여 그물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공의 궤적을 멍하니 쫓느라,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공장이 많고 바다가 없는 도시에서 태어났어요. 우리 동네엔 바다 대신 작은 강이 있었어요. 자주, 강가에 나갔어요. 그러면 숨이 좀 트이는 것 같았거든요."

관중들의 함성 때문일까, 바로 옆에 앉은 그의 말이 까마득히 먼 곳으로부터 들려오는 것 같다.

"열일곱 살 때였어요. 아주 더운 밤이었고, 친구들 여럿이 뒤섞여 강가에서 술을 마셨어요. 우리는 다 취했고, 이유도 모르는 싸움이 일어났어요. 그리고, 사고가…… 있었어요."

흰 옷이 공을 빠르게 드리블하며 코트를 가로질러 질주했다. 파란 옷이 그를 따라 전속력으로 뛰었다.

"깡마르고 키만 멀대 같이 큰 녀석이었어요. …… 학교 농구부 센터였는데, 한 게임 뛰고 나면 쿵쾅쿵쾅 심장이 춤추는 느낌이 참 좋다던 그런 녀석이었어요."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날, 어쩌다가 내가, 그 녀석을 밀치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목소리에 연한 물기가 어렸다. 그는 울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나는 그의 얼굴을 쳐다볼 수가 없다.

"스무 살을, 갇혀서 맞았어요. 몇 해 만에 나왔을 때, 사실은 밖이 더 큰 감옥이라는 걸 알았어요. 내 이름으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가 없다는 것도."

파란 옷이, 불가능해 보이는 곳에 서서 3점 슛을 쏘았다. 흐트러짐 없는 동작이었다. 공은 목표점을 향해 정확히 날아갔다.

"사람을 죽인 놈이라는 시선들.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끔찍했던 건, 내가 나를 용서할 수 없다는 것, 아니, 나라는 존재를 스스로 인정할 수 없다는 거였어요."

"……."

"할 수만 있다면 나라는 존재 자체를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바꿔 버리고 싶었어요. 핏속까지 비워버리고 갈아치우고 싶었어요. 다시 태어나고 싶었어요."

심판이 길게 휘슬을 불었다. 환호성과 열기, 야유와 박수의 세계에서 오로지 우리 둘만 투명한 유리벽 안에 고립된 채 침묵했다. 이윽고, 그가 천천히 입을 뗐다.

"은수씨. 정말 미안해요. 김영수는, 내가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