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후보 공천 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한나라당의 공천 헌금 파문은 국민을 경악하게 한다. 그러나 이번 비리의 본질이 한나라당 지도부의 무능함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 국민을 더 절망하게 만든다. 한나라당은 부패한 정당이라는 꼬리표를 떼기 위해 여러 차례 '깨끗한 정치'를 부르짖었다. 하지만 항상 일을 저지르고 난 뒤에 일벌백계 운운하는 반성문만 쓰는 정당이다.

이러한 문제가 되풀이되는 이유는 정치인과 정당의 속성에 기인한다. 정치인은 비록 특정 정당에 속해 있지만 개인 사업자와 같고 이들에게는 항상 돈과 조직이 필요하다. 그리고 개별 정치인의 사업자등록증은 공천이란 생명줄을 잡아야 가능하다. 따라서 돈과 조직 그리고 공천은 정치인에게 필수 불가결의 요소인 셈이다.

돈에 관한 한 지난 번 17대 총선 때 만들어진 정치개혁법으로 인해 국회의원들의 돈 정치 관행에 어느 정도 제동이 걸렸다. 또한 17대 총선에서는 여당과 야당 모두 외부인사가 공천심사위원회의 반 이상을 차지하여 현역 의원들의 입김을 차단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 결과 한나라당의 경우는 의원들에 대한 대폭 물갈이가 가능했었다.

그런데 이번 지방선거 후보의 공천권을 지역구 국회의원들에게 대폭 위양한 것은 마치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를 맡긴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왜냐하면 개인 사업자인 지역구 국회의원에게는 자기 지역 관리에 충성을 바칠 사람이 필요하므로 이들을 최우선으로 공천할 것임은 누구나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중앙당 차원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분권형 공천방식이 '공천혁명'에 가까운 것이라면서 한껏 고무됐었다. 만일 지금과 같은 공천 비리를 예견하지 못했다고 한다면 당 지도부의 안일함과 무능에 기가 막힐 뿐이다. 그런데 나름대로의 통제 시스템을 가동시켰는데도 이 지경이라면 그 실력이 얼마나 형편없는지를 입증해준 셈이 된다.

분권형이 중앙집권형에 비해 갖는 우위성은 커뮤니케이션의 유연성이며 권한의 하부 계층 위임에 따른 조직 운영의 효율성이다. 그러나 분권형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즉 조직 전체에 대한 통제력에 자신이 있고, 권한을 위임받은 쪽의 책임감과 도덕성이 담보돼야 한다.

그러나 박 대표를 비롯한 한나라당 지도부는 그 어떤 조건도 성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분권형 공천을 실험한 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이번 지방선거에 유능하고 참신한 인재들을 투입하기 위해 구성된 한나라당 인재영입위원회의 외부 인사 영입 노력은 지역구 현역 의원들의 반발로 헛수고가 되고 말았다. 그만큼 지역구 의원들의 자기 사람 지키기가 극에 달했었는데도당 지도부는 속수무책으로 일관했던 것이다.

이번 분권형 공천제도가 민주적인 당 운영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한 시도였다지만 결국 당 지도부의 안일한 태도와 철저한 감독 시스템 부재 등 준비 소홀로 실패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공천심사위원장직을 맡고 있었던 전임 사무총장이 성희롱사건에 연루되면서 당 지도부의 통제력에 구멍이 나고 집중력도 잃었을 것이다. 한나라당이 이번에 터진 공천 비리사건을 일부 의원의 개인적 문제로 몰고 가면서 지도부가 면피하려 든다면 국민의 마음을 되돌리기 어려울 것이다.

이번 공천 비리사건은 그동안 마음에 들지 않아도 할 수 없이 한나라당을 대안 정당으로 생각하던 국민들을 한층 더 정치로부터 멀어지게 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정당의 혁신은 지도자의 부르짖음만으로는 부족하다. 명분에 매달리지 말고 하루 속히 이번 공천작업의 문제점을 보완하여 유권자들이 투표장에서 사라지지 않게 하기를 바란다.

(강혜련·이화여대 교수 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