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리옹의 '메종 드 라 당스'(무용의 집). 유럽 최고의 무용 전문 극장으로 세계적 수준의 단체만 선별해서 올리기 때문에 무용인들에게는 '꿈의 무대'로 불린다. 12일 밤(현지 시각) 이 무대는 장님 아비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푸른 바다에 제 몸을 던진 한 조선 처녀의 이야기로 넘실거렸다.
전통 무용의 현대화 작업을 30년째 이어오고 있는 창무회(이사장 김매자)가 이 극장 올 시즌 초청작으로 무용 '심청'을 공연했다. 한국 무용 단체가 '메종 드 라 당스'에 초청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심청의 탄생 장면부터 벽안(碧眼)의 관객 1000여명은 시선을 떼지 못했다. 객석에서 무대까지 흰 색 천을 깔아서 이어놓아 삶과 죽음, 윤회의 세계를 마치 하나의 길처럼 표현했다.
천장에서 내려온 세 가닥 줄의 끝 자락에 무용수들이 엉켜서 내려오며 부드러우면서도 절도 있는 한국 무용을 선보였다. 여성들이 한껏 부드러움을 드러내면, 남성들은 날카롭게 각(角)이 살아있는 동작으로 이를 제어했다. 1m90에 육박하는 심청 아비 역의 박영일씨는 슬픔과 절망을 기다란 사지(四肢)로 허공에 훅훅 흩뿌렸고, 그 동작에 관객들은 젖어들었다.
무대 전체에 한국 무용의 전통미와 현대적 감각의 세련미가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뤘다. 명창 안숙선의 제자들인 정미정과 서정금이 5개 막에 번갈아 등장하며, 처연하면서도 명징한 판소리의 세계를 펼쳐보였다.
한국에서 온 무용단의 무대를 지켜 본 리옹 시민들은 5막이 모두 끝난 뒤에도 자리를 지키며 30여 분간 열광적인 박수를 보냈다. 심청 아비가 눈을 뜨는 마지막 장면이 끝난 뒤에는 끝날 줄 모르는 환호에 무용수와 소리꾼, 고수들이 3차례나 무대 중앙으로 나와야 했다. 프랑스의 무용 전문 월간지 '당스'의 기자인 질리아 발레티-필레리코(37)씨는 "매우 아름답고 시적이었다. 컨템퍼러리 댄스(현대 무용)면서도 전통적 요소를 잘 담고 있다"고 말했다. 고교생 길리베르 오헬리(16)는 "선이 무척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지난 7일 파리에서도 부활절 시즌에 토요일까지 겹쳐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았지만, 주불(駐佛) 일본 문화원에서 열린 공연에서 김매자씨는 살품이와 무속춤, 승무를 현대화한 춤으로 관객 300여명의 호흡을 낚아챘다. 끊긴 듯 이어지고 유유히 흐르다 얼어붙은 듯 다시 멈추는 춤사위에 객석에서는 신음에 가까운 탄성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한국의 전통 무용은 유럽의 한복판에서 '지역적인 것이 곧 세계적인 것'이라는 명제를 직접 실천해보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