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어느 신문의 누구시라구요?"

큰형뻘 되는 기자의 축하 전화에 고맙다는 말 대신 대뜸 누구냐고 먼저 물어본다. 한화 이글스 직원들은 열아홉살짜리 고졸 신인 류현진이 무척 내성적인데다 인터뷰에도 익숙지 않다고 미리 알려줬다. 과연 그랬다. 인터뷰 전화를 받자마자 처음 내뱉은 말이 '누구세요'라니.

프로 데뷔전에서 승리를 따낸 감격의 뒤끝은 길었다. 시끌벅적한 서울 원정 숙소의 분위기가 그대로 전해졌다. 오랜만에 보는 깜짝 신인 돌풍에 모두들 축하 분위기였으리라.

키 1m88에 몸무게 100㎏. 한국야구위원회(KBO)의 공식 선수프로필에 나온 몸무게는 96㎏인데 그새 4㎏이 늘었단다. 보기에도 엄청난 체구지만 막상 수치로 확인하니 더 위압적이다. 12일 잠실 경기서 날이 바짝 선 LG 타자들을 상대로 7⅓이닝 3안타 10탈삼진 무실점 승리투수.

마냥 야구가 좋아서 야구를 시작했고, 처음부터 투수를 하고 싶었다. 시즌 초반 프로야구를 강타하며 깜짝 데뷔한 그의 휴먼스토리를 들어봤다.

'소문난' 한기주에 가려… 아무도 그를 주목하지 않았다
2차지명 설움딛고 '명품 독수리' 힘찬 날갯짓

때는 1997년. 국내에서는 '적토마' 이병규(LG)가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었고, 해외에서는 메이저리거 박찬호가 LA 다저스에서 연승행진을 벌이고 있었다. 인천 창녕초등학교 3학년 류현진은 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인천 도원구장을 드나드는게 너무도 행복했다.

투수가 뭔지 포수가 뭔지, 또 스리아웃이 뭔지 아버지의 차분한 설명을 듣고 야구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한달 여를 조른 끝에 야구부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체격이 작아서 주전 자리는 꿈도 꾸지 못했다.

포수를 제외한 전 포지션을 뛰어봤지만, 돋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1년 뒤 갑자기 커진 키에 투수를 시작했고, 재미도 배가됐다. 그리고 지금까지 투수 포지션을 놓아본 적이 없다.

대학 다니는 형이 먼저 운동을 시작했고, 부모님이 너무도 운동을 좋아해 큰 반대가 없었던 터라 처음부터 탄탄대로였다.

그리고 무조건 적극적이었다. 흔히 A형이라면 소극적이라고 하지만, 류현진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과감히 그 편견을 깼다.

작년 청룡기 대회 성남과 8강전
마냥 조용한 떡잎은 아니다

류현진은 지난해 청룡기 8강전서 성남고를 상대로 17탈삼진 완봉쇼를 펼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8개 구단 스카우트들의 리포트에 류현진의 평점은 '왼손 특A급'이었다. 데리고 오면 '무조건 성공'이라는 것.

고교 2학년 때 왼쪽 팔꿈치 인대접합수술(일명 토미 존 서저리)을 받고 난 뒤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것이 스카우트들의 진단이다.

류현진은 올해 신인 2차 1순위로 한화의 지명을 받았다. 인천 동산고 출신이라 SK로부터 1차 우선지명을 받을까 싶었는데 2차 지명으로 밀려난 것이다. '명품'을 알아본 한화는 그를 찍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러나 12일 LG와의 프로 데뷔전 직전까지 누구도 그를 주목하지 않았다. 그만큼 그의 등장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지난 2월 한기주(기아)와 유원상(한화) 등 기라성같은 동기들이 해외 전지훈련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무렵 그는 묵묵히 땀만 흘렸다.

"고교시절 한기주-유원상 부러워. 이젠 자신 … 신인왕 먹어야죠"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그랬는걸요. 지금은 익숙해서 별 신경이 안 쓰여요."

샘을 한창 낼만한 나이지만, 익숙하단다. 동기인 한기주나 유원상과의 비교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러나 사실은 고교시절 신문을 펼치고 TV를 켜면 한기주, 유원상 얘기 뿐이어서 속이 상했다. 프로에 가면 반드시 뒤집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쌓았고, 이제 그 기회를 잡았다. 그리고 욕심이 생긴다. 누가 뭐라 안해도 욕심을 낼만한 상황이 됐다.

"당연히 선발 10승에 신인왕이 목표죠."

묻지도 않았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큰 소리로 외친다.

칭찬에 인색한 김인식 감독마저 "3년뒤 WBC에 출전시키려면 지금부터 착실하게 교육시켜야 한다"며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한화의 주축 선발 자리는 당연한 결과. 올 연말 카타르 도하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뽑혀 WBC에서 활약한 선배들의 영광을 잇고 싶기도 하다.

(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