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실지 모르겠네요. 저는 조정호라고 합니다."
조정호씨에게서 연락이 왔을 때 하마터면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 불길한 예감으로 심장이 오그라드는 듯했다.
"괜찮으시면, 잠시 뵙고 싶은데요."
"예… 언제?"
나는 어눌하게 반문했다.
"빠를수록 좋습니다. 제가 지금 그쪽으로 가도 좋고요."
그와 나는 30여분 뒤, 우리 동네 커피숍에 마주앉았다. 몇 달 전 회사 직원 결혼식장에서 한 번 보았을 뿐이지만, 그동안 영수로부터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인지 왠지 썩 잘 아는 사이처럼 느껴졌다. 그가 뱉은 첫 마디는 몹시 의외였다.
"혹시, 지금 사장님 어디 있는지 아시나요?"
아주 쉬운 문장인데 한 번에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지금 김영수가 어디 있는지를 나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그 말은 곧, 지금 김영수가 어디 있는지 이 사람도 모르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불가해한 수학문제 앞에 홀로 맞닥뜨린 듯 뒷골이 지끈거렸다.
조정호는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 내 얼빠진 표정을 보자마자 내가 별다른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단박에 파악했다.
"이거 괜히 죄송하게 됐습니다. 급해서 찾아오긴 했는데, 제가 괜한 짓을 했나 봅니다."
"언제부터죠?"
나는 따지듯 물었다. 조정호에 의하면, 김영수가 회사에 출근하지 않은 것은 오늘로 닷새째라고 했다. 그러니까 내가 청혼을 한 다음날 아침부터 출근하지 않은 것이 된다. 대체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혹시 내 청혼에 겁을 집어 먹고 줄행랑이라도 쳤단 말인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몰랐어요, 전혀. 그냥 연락이 안 온다고만 생각했어요. 이상하긴 했어요. 나한테 전화해주기로 했었거든요. 아시잖아요. 그럴 사람 아니란 걸."
"그렇죠."
맞장구를 치면서 조정호가 냅킨으로 꾹꾹 이마를 눌러 닦았다.
"… 저, 혹시 말입니다."
그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눈동자에 불투명한 긴장감이 어려 있었다.
"사장님이 무슨 다른 얘길 한 적은 없나요?"
이 사람이 나에게 원하는 답이 어떤 종류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무슨 말씀이신지?"
"아, 그러니까 이를 테면 본인의 요즘 심경이라든지. 고민이라든지. 아니면 미래의 계획이라든지. 여자친구한테는 그런 걸 털어놓기도 하고 그러잖습니까."
어쩐지 그가 무엇인가를 탐색하는 동시에 얼버무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미 나는 그가 던진 질문의 그물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수가 나에게 '자기 얘기'를 털어놓은 적이 있었던가. 나는 필사적으로 단서가 될 만한 것을 기억해내려 애썼다. 곧 절망이 찾아왔다.
"아니요. 잘 모르겠어요. 기억이 안 나요. … 원래 자기 얘기를 남한테 떠벌리는 스타일은 아니잖아요."
변명처럼 덧붙이며, 귓바퀴가 달아올랐다. 괜찮은 남편감이라 판단 내리고 청혼까지 감행했건만, 나는 김영수라는 한 인간의 내면에 대해 딱히 아는 것이 없었다. 그의 심경, 그의 고민, 그의 미래에 대하여 아무것도.
"하도 연락이 안 되어서 그저께는 가양동 아파트에 가 봤어요. 경비원 말로는 집에 안 들어온 지 며칠 됐다고 하네요. 마침 저한테 열쇠가 있어서 들어가 봤는데, 집안이 아주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어요. 금방이라도 대청소를 마친 것처럼."
"그럼, 혹시."
나는 겨우 입술을 달싹였다.
"영수씨가 자발적으로 사라졌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조정호는 묵묵부답이었다.
"그럴 리가 없어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 사람 그렇게 대책 없는 사람 아니에요."
불과 얼마 전, 우리 엄마가 집을 나갔을 때 자기 일처럼 걱정해준 것이 바로 김영수였다. 그때 내가 얼마나 마음 졸이고 힘들어했는지 잘 아는 그가 스스로 그런 행동을 할 리 만무했다.
"사고예요. 사고가 난 거예요."
되풀이해 중얼거리면서 나는 허둥허둥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당장 신고부터 해야 돼요."
납치, 뺑소니, 퍽치기.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오싹해지는 범죄들이 무시로 일어나는 데가 바로 내가 사는 이 곳, 서울이었다.
"잠깐만요."
조정호가 단호히 내 팔을 잡았다.
"안 됩니다, 그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