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에서는 눈만 돌리면 '공사판'이다. 기존의 주요 수출품이던 기네스 맥주 공장부지에 들어서는 대규모 IT단지 조성부터 시작해, 제조업·내수(內需) 관련 회사는 첨단 다국적 기업으로, 정부 각 부처는 국제업무 사무실로 변신하고 있다. 각 대학에서도 시장(市場) 친화적 교육기관으로 변신하기 위해 한창이다. 올해 개교 25주년을 맞은 국립대학 DCU (Dublin City University). 국가 혁신 초기에 탄생한 이 대학은 최근 아일랜드 최고 명문으로 떠올랐다.
이 학교가 개설한 전공 과목은 '첨단산업' '국제거래'에 필수 불가결한 공학기술·경영학·컴퓨터·통역에 국한된다. 정보기술(IT)과 비즈니스 교육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이 학교 4학년 전자공학과 애덤스 크리스토퍼(21)씨는 미국 반도체 기업 '인텔'에 스카우트됐다. 3학년 2학기 때 정규 학사에 따라 7개월간 인텔 더블린 지사에서 인턴을 하며 채용이 결정됐다.

"대학 다니며 교수의 강의를 들은 건 25%쯤 돼요. 나머지는 국내 벤처기업과 3~4개월짜리 프로젝트를 진행하거나, 외국기업 인턴을 하거나, 현장 전문가의 실무 강의를 들었습니다."

졸업 1년 반 전에 결정된 크리스토퍼의 취업도 별로 빠른 것이 아니다. 그의 입학 동기들은 빠르면 1~2학년을 마치고 에릭슨, 메릴린치, IBM, 델 컴퓨터 등 다국적 기업에 입도선매(立稻先賣)되었다. 정부가 지난 2001년 4년제 학사와 2년제 석사, 박사 과정에 대해 1년 단위로 학위를 만들어 조건만 갖춰지면 언제든 합법적으로 사회에 진출할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대학 3학년 때 사회에 진출하는 학생에게는 '3년제 학사학위'를, 1년간의 석사과정을 마친 뒤 기업에 채용되는 학생에게는 '1년차 석사학위'를 수여하는 것이다. 또 대학과 기업이 함께 교육과정을 결정하고 대학 과정 자체가 전문 자격시험으로 연결되게 했다.

전자공학부 짐 도울링 학장은 "학생을 현장에 연결시켜주고 모니터링을 하며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는 식으로 강의한다"고 말한다. "저 자신도 연구실과 현장 경력이 반반입니다. 교수든 학생이든 학교에 얽매여 있을 필요가 없어요."

아일랜드의 지난 10년은 '외국 기업 끌어들이기'였다. 국제조직인 아일랜드 기업진흥청(Enterprise Ireland)이 외국기업을 끌어오면, 대학들은 그 기업이 원하는 기술과 어학실력을 갖춘 인재를 2~3년 내에 맞춤생산해 줬다.

여기에 법인세 인하·노동시장 유연화 등 경제개혁이 맞물려 1990년대 이후 1200여개 외국기업 유치에 성공했다. 현재 아일랜드 내 연간 임금 총액의 55%를 외국기업이 지급하고 있다. 이런 노력의 결과 1980년대 17%에 달하던 실업률은 4%대로 떨어졌고, 특히 고학력 실업률은 제로(0)에 가깝다.

21세기, 아일랜드는 이제 토종기업의 글로벌화에 주력하고 있다. 여기 필요한 인력과 터전을 제공하는 임무 역시 대학들이 맡고 나섰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교내 기업 양성소(campus incubation)'이다. 2000년 이후 전국 주요 19개 대학들이 앞다투어 세운 벤처 육성 기관으로, '제2의 구글'(미국 벤처)을 꿈꾸는 학생들의 연구·개발과 창업을 지원한다.

'성인과 학자(Saints and Scholars)의 나라'로 불릴 만큼 인문학 전통이 강한 아일랜드의 대학들이 철저한 현장 위주의 강의와 실습, 그리고 빠른 사회 진출을 돕는 '기업선호형 인재 양성·중개소'로 변신한 이유는 뭘까. "최근 몇 년 새 명문대의 기준이 취업률 위주로 완전히 바뀌었다"는 게 대학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최대 규모 종합대학인 UCD(Univ ersity College Dublin)도 최근 '새로운 UCD(Nova UCD)'라는 이름의 교내기업 양성소를 최대 규모로 짓고 학생들의 현장형 공부와 창업을 돕는 방향으로 바꿨다.

1592년 세워진 유럽의 명문 트리니티 대학(Trinity College). 신학·철학·역사학 등 순수 인문학의 발상지, 고풍스러운 건물과 소장 고서(古書) 'Book of Kells' 만으로 명성을 유지할 수 있는 학교다. 이 학교는 지금 교내기업 양성소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학교에서 3㎞ 정도 떨어진 곳에 현대적인 과학 단지(Science Park)를 건립 중이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이 조성한 '실리콘 밸리' 같은 산학 연구단지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트리니티 대학은 또 지난 2003년 인문·사회과학을 비즈니스에 접목해 가르치는 '국제통합학부'를 신설했다. 철학·역사학·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도 금융과 마케팅, 국제 지역학을 함께 배우는 것이다. 국제통합학부 학생 휴 바이런(20)씨는 "유학이나 이민이 보편적이었던 부모 세대와 달리, 우리에겐 국내에서 제대로 공부하면 좋은 일자리를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고 말한다.

키워드 교내 기업 양성소는 대학들과 기업진흥청이 연계한 아일랜드형 산학(産學)협력기관으로, 현재 19곳이 있다. 주로 IT(정보기술)·BT(생명기술)를 다루는 직원 1~10명 규모의 미니 벤처들이 대학당 20~30개 입주한다. 학교는 약간의 임대료를 받고 연구·개발 지원을 해주고, 학생들이 이곳에서 프로젝트 수업을 하거나 직접 창업하기도 된다. 지난 1991년 트리니티 대학 내의 컴퓨터학부 학생들이 세운 벤처 '아이오나 테크놀로지'가 미국 나스닥에 상장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