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의 첫머리인 '고려 왕실 세계(世系)'는 "고려 왕실의 조상은 역사 기록이 없어서 상세하지 않다"는 의문의 구절로 시작한다. '고려사'는 고육지책(苦肉之策)으로 의종 때 김관의(金寬毅)가 편찬한 '편년통록(編年通錄)'을 인용한다. 그에 따르면 백두산 출신의 성골장군(聖骨將軍) 호경(虎景)이 강충(康忠)을 낳고, 강충은 이제건(伊帝建)과 보육(寶育)을 낳았는데, 보육이 천지를 오줌으로 가득 채우는 꿈을 꾸자 태몽으로 여긴 이제건이 딸 덕주(德周)를 주어서 딸 진의(辰義)를 낳았다. 서기 753년(경덕왕 12년)에 훗날 당(唐) 숙종이 되는 당나라 귀인(貴人)이 예성강에 와서 진의에게서 작제건(作帝建)을 낳는데, 그가 왕건의 조부이다. 제후(諸侯)는 4대 추존(追尊)임에도 불구, 왕건은 3대만 추존했고, 보육을 추존한 것은 당 숙종을 추존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왕건의 증조부가 당 숙종(재위 756~762)이라는 설명은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충선왕은 연경에서 원나라 한림학사에게 "숙종은 대궐 밖을 나간 일이 없는데, 어느 겨를에 그곳에서 자식까지 두었겠습니까?"라는 힐문을 듣고 대답을 못 했고, 민지(閔漬)가 대신 "사실은 숙종이 아니고 선종(宣宗·재위 846~859)"이라고 답했다는 일화가 '편년강목(編年綱目)'에 실려 있다. 선종 이침(李?)은 헌종(憲宗·805~820)의 열세 번째 아들로, 만 36세 때(846)에야 환관 마원지(馬元贄) 등에게 영입되어 즉위한다. 그러나 성호 이익이 '성호사설' 경사문에서 "당 선종이라고 한 것은 우리 동방 사람들이 외람되게 끌어댄 것이다"라고 비판한 것처럼 이 역시 의문이다.

근래 김성호 박사가 '중국 진출 백제인의 해상활동 천오백년'에서 왕건을 중국의 장강(長江)과 회하(淮河) 지역에 거주하던 백제계(系) 유민의 후예라고 본 것이 흥미로운데, 왕건이 북진(北進)을 국시로 삼은 것을 보면 고구려계 유민일 가능성도 있다. 북한의 현릉(顯陵·왕건릉)에서 나온 '고려 태조 왕건 청동상'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온다고 하니 인물상을 보면서 수수께끼 여행을 해야겠다.

(이덕일 · 역사평론가 newhis1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