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프랑스는 시곗바늘을 38년 전으로 되돌린 것 같다. 68혁명의 중심지였던 소르본대학에서 연좌 농성이 벌어지고 경찰이 투입됐다. 전국 대학들이 3주 넘게 문을 닫았고 경찰이 겹겹이 에워쌌다. 근로자와 대학생, 고등학생 수십만 명이 전국적 시위에 동참하고 있다. 중도좌파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이를 '소르본의 봄'이라고 표현했다.
'68년 소르본의 봄'과 '2006년 소르본의 봄'…. 외양은 비슷하다. 하지만 '68세대'들조차 "이건 68혁명의 부활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왜?
38년 전, 프랑스 젊은이들은 열악한 대학시설에, 권위적인 교수에, 억압적 사회에 반발했다.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외치며 기득권에 도전했다. '대혁명' '68혁명'으로 이어지는 저항의 역사는 프랑스를, 시대를 앞서나가는 정신의 선두에 서게 했다. 권위를 허물었고 기성의 금기에 도전했다.
2006년 봄, 프랑스 젊은이들은 'CPE(최초고용계약:만 26세 미만 젊은이를 채용하고 2년 이내에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도록 허용한 법안)를 철회하라'며 거리에 쏟아졌다. 프랑스의 철밥통 고용으로, 경력 없는 젊은이나 번듯한 학벌 없는 비숙련 노동자들은 노동시장에서 점점 소외되고 있다. 10% 안팎의 실업률, 23%의 청년 실업률이 증거다. 정부가 뒤늦게 노동개혁에 나서자 프랑스 대학생들은 "부모 세대가 누리던 안정을 왜 우리에게서만 빼앗아가느냐"며 기득권을 보장해 달라고 시위를 하고 있다.
'68세대' 정치인 다니엘 콩 방디는 "68혁명은 미래를 갈구했다. 하지만 지금은 미래와 변화를 두려워한다"며 이번 시위가 68혁명의 부활이 아니라고 했다. 전 세계에서 프랑스 젊은이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68년 프랑스 젊은이들은 전 세계 젊은이들의 가슴에 저항과 자유의 갈망을 불 붙였다. 해체주의, 탈구조주의의 지적 흐름도 낳았다. 지금은 정반대다. 세계 각국 사람들이 인터넷 공간에서 프랑스 젊은이들한테 훈수를 두고 있다.
"세상이 얼마나 변했는데 부모 세대와 똑같은 기회와 고용을 보장해 달라고 하나."(포르투갈에서)
"21세기에 눈떠라. 불로소득으로 편히 살던 식민지 시절의 삶은 지나갔다. 프랑스의 '환상적' 노동문화가 지속되면 어떤 비참한 결과가 초래될지를 시라크도 자각한 것이다."(인도에서)
"눈을 돌려 파리 교외를 봐라. 수많은 이민 2세 젊은이들은 일자리가 없다. 철밥통 고용을 보장하라며 시위하는 건 너무 이기적이지 않나."(영국에서)
68혁명 당시의 프랑스는 경제가 급성장하는 '전후(戰後) 영광의 30년' 시절이었다. 폭발한 젊은이와 근로자들은 '68혁명'을 통해 성장의 과실을 나눠가졌고, 풍요롭고 자유로운 삶을 구가하며 기득권층이 되어갔다. 오늘의 프랑스는 70년대 중반 이후 '저(低)성장과 대량 실업의 30년'을 보내며 피로와 불안감, 비효율이 누적된 상태다. 거리에 쏟아진 젊은이들을 보면서 프랑스 사회는 변화와 개혁을 두려워해온 과거회귀형 자화상을 발견한다.
이렇듯 두 '소르본의 봄'도 다르다. 혁명의 열정은 사라지고 시위의 구호만 남았다. 그래서 '2006년 소르본의 봄'은 뜨겁고 눈부신 게 아니라 서글프고 힘겹다.
(강경희 · 파리특파원 khkang@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