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벨트를 교묘히 허물고 들어가 거액의 시세차익을 남긴 투기세력들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 과정에서 공무원들이 뇌물을 받고, 토지의 용도를 임야에서 대지로 바꿔주고, 투기꾼들은 엉터리로 서류를 꾸며 거액의 국고보조금을 타내는 등 우리 사회 부패구조의 단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공공건물 건립" 수십억 보조받은 업자들 건물 몰래 팔아 또 수십억원 차익 남겨
◆그린벨트를 둘러싼 복마전
문화관광부 산하단체인 H박물관 이사장 박모(55)씨는 지난 2002년 11월 그린벨트인 서울 서초구 염곡동 608평 임야를 7억원에 샀다. 박씨는 이 땅에 "사진박물관을 짓겠다"며 문화관광부로부터 국고보조금 10억원을 받았다. 현행법상 그린벨트 내에서는 체육근린시설, 도서관 등 공공목적으로만 건축이 가능하다는 점을 이용, 서초구청의 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박씨는 2005년 1월 이 박물관을 정모(35)씨에게 59억원을 받고 팔았다. 40여 억원의 시세 차익을 남긴 것이다. 게다가 지하 1층은 대학의 실습실로, 3층은 프로덕션 회사에 각각 4억, 1억2000만원씩 받고 임대까지 줬다. 이 과정에서 관리, 감독을 해야 하는 서초구청은 손을 놓고 있었다. 농림부 산하단체인 H식품협회 회장 김모(47)씨는 2005년 7월 그린벨트 내에 '농산물직판장'을 짓겠다며 국고보조금 17억5000만원을 횡령했다. 이 돈은 원래 농산물 직거래 장터를 열기 위한 장소 임대보증금으로 받은 것이었다. 하지만 김씨는 이 돈으로 내연녀 장모(45·D영농조합법인 대표)씨를 시켜 서울 서초구 내곡동 그린벨트 약 1000여 평을 샀다. 시세차익을 노려 되팔기 위한, 투기 목적이었다.
◆그린벨트 용도 바꿔 거액의 시세차익 남겨
경찰은 그린벨트의 토지 형질변경을 허가해주는 과정에서 공무원과 업자 간의 부정한 거래가 상당수 있다는 점이 포착됐다고 말했다. H식품협회측은 건축허가를 받기 위해 서초구청 공무원 성모(53·6급)씨 등 6명에게 3500만원 상당의 뇌물과 향응을 제공했다. 성씨 등은 지난해 3월 "그린벨트인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 농산물직판장을 건립해도 되느냐"는 문의를 받자 "5억5000만원을 내면 토지형질변경 및 건축허가를 내주겠다"고 제안한 것으로 경찰 조사결과 드러났다.
경찰에 따르면, 투기세력은 일단 임야에서 대지로 형질을 변경한 후 관할구청의 눈을 피해 땅을 되파는 수법으로 수십 배의 시세차익을 거둬왔다. H박물관의 경우 임야에서 대지로 형질이 변경된 후 평당 7만9300원이던 땅값이 184만원으로 뛰었다. 무려 25배나 폭등한 셈이다.
◆온갖 뇌물 다 받은 구청 공무원
경찰조사 결과 이 같은 그린벨트 내의 공공건물 건축 허가를 둘러싼 구청 공무원들의 뇌물수수가 조직적이고 반복적으로 이뤄져 왔음이 드러났다.
서초구청 차모(56·4급) 국장은 1992년부터 D영농조합법인 대표인 장씨로부터 도농(都農)간 직거래장터 행사 추진과 선거사무실 집기 찬조 등의 명목으로 현금, 갈비세트, 화문석돗자리, 전복, 한산모시 등 1억원 상당의 금품을 받아온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1998년에는 "구청장 집들이 선물로 강화도 화문석을 선물하라"고 요구하기까지 했다.
성모(53·6급) 팀장은 2004년 8월쯤 "담당과장을 만나게 해줄 테니, 과장이 잘 가는 근처 식당으로 곶감상자에 현금 5000만원을 넣어 갖고 와서 선물세트처럼 인사하라"고 뇌물을 요구했다.
강모(46·6급) 팀장은 2005년 2월쯤 "나도 옷 벗을 각오로 모험을 해야 하는데 확신을 달라. 일단 내 통장에 2억원을 꽂아달라"고 뇌물 5억원을 요구하기도 했다.
서울경찰청 수사과는 21일 공무원 성모(53)씨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정모(54)씨 등 8명을 불구속 입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