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해운대구 반송2동의 한 영구임대 아파트. 신모(여·29)씨 가족은 지난 2002년 여름 이곳으로 들어왔다. 신씨의 남편은 해병대 하사로 번듯한 직업군인이었지만, 남편이 폐결핵으로 갑자기 제대하면서 싼값의 임대아파트를 찾아 이곳으로 들어왔다. 신씨는 백일이 갓 넘은 막내딸 민지(가명)에게 빈 젖병을 물리고 있었다.
"원래 젖병의 눈금이 160될 만큼의 양을 먹여야 해요. 하지만 120정도밖에 먹이질 못해요. 조금 줄이면 몇 번 더 먹일 수 있거든요." 행여 아이의 발육이 늦을까, 엄마는 죄스러운 듯 고개를 들지 못했다.
군인연금으로 월 132만원을 받지만, 대부분 남편 병원비와 이자로 나간다. 남편은 요양 중이고, 신씨는 아이 때문에 벌이에 나설 수도 없다. 하지만 4인 가족 최저 생계비(117만원)를 넘는다는 이유로 정부의 지원도 못 받는다.
부산 해운대구 반송동. 신씨처럼 갑자기 가난의 늪에 빠져든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1967년부터 철거민들이 한 세대당 15평, 10평씩을 받고 정착했다. 그래서 방 2개가 넘으면 '부자' 소리를 듣는다. 실직이나 사업 실패, 장애, 이혼 등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이들이 싼 집값을 찾아 몰려든다.
정부의 생계비 지원을 받는 기초생활보장 대상자가 2003년에 5004명이었지만, 2004년 5646명, 작년엔 6349명으로 매년 10% 이상 늘어났다. 전체 주민 10명 중 한 명이 기초생활보장 대상자인 셈이다. 의료비, 교육비가 들지만, 소득이 쫓아가지 못해 빈곤에 허덕이는 이들이 그만큼 늘어난 것이다.
반송3동의 4평짜리 단칸방에서 고교1학년 딸, 초등학교 6학년 아들과 함께 사는 권모(여·45)씨는 올 2월부터 새로 정부 지원을 받고 있다. 20년을 살아온 남편과 빚 때문에 작년에 이혼한 그의 집엔 TV도, 냉장고도 없다. "우리는 그래도 다행 아잉교. 도와줄 자식 있다고 지원도 못 받고 밥 굶는 사람이 이 동네에 얼마나 많은데…." 사정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건강보험에 월 소득이 100만원 이하로 신고된 이들이 1만179가구 중 2500가구나 된 것을 보면 나타난다. 4가구 중 1가구꼴이다. 소득은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지만 기초생활보호대상자와 달리 자녀와 재산이 있다는 이유로 정부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반송동 주민처럼 빈곤층이나 준(準) 빈곤층에 속하는 이들은 전국에서 모두 502만명. 전체 인구의 10%를 웃돈다. 148만명은 기초생활보호대상자로 지정돼 정부의 도움을 받지만 나머지 354만 명은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문제는 이들이 희망을 잃고 깊은 좌절에 빠져 산다는 점이다. 보건복지부의 작년 설문조사 결과 준 빈곤층의 47.2%가 "앞으로 생활환경이 지금보다 더 나빠질 것"이라고 응답했다.
(특별취재팀 )
(탁상훈기자 if@chosun.com)
(최규민기자 min4sally@chosun.com)
(조의준기자 joyjun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