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구가 너무나 잘했는데 아쉽게 졌어요. 그래서 연주가 시작될 때 약간은 김이 샌 감이 있어요."
폭소 5초간―. 19일 밤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준비해온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과 말러 교향곡 5번 연주가 2시간 반 만에 끝나자 청중이 박수를 치며 일어섰고, 마에스트로 정명훈은 객석 쪽을 향해 돌아서 입을 열었다. 이날 연주 직전에 열린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준결승전에서 한국이 패배한 소식을 전하는 정씨의 '야구 발언'에 관객 2000여 명이 다 함께 웃은 것이다.
정명훈은 런던 심포니와 지난달 런던에서 2차례 콘서트를 연 뒤, 일본과 한국에서 잇따라 아시아 투어를 가졌다. 이날은 12차례에 걸친 아시아 투어 가운데 마지막 공연이 끝맺는 순간. 정씨는 이어 "우리는 최선을 다했고 너무나 잘했다. 한국 팀의 '파이팅 정신'을 살려 한국을 응원하는 심정으로 앙코르 곡을 연주하겠다"고 말했다.
런던 심포니와 정씨가 준비한 곡은 프로코피예프의 '로미오와 줄리엣' 가운데 '티볼트의 죽음'. 마치 승전가처럼 생동감 넘치는 리듬의 이 곡은 실제 한국 야구를 위한 응원가를 연상시켰다. 청중은 한 사람도 먼저 나가지 않았고, 앙코르 연주가 끝난 뒤 몸을 들썩이며 더 열광적으로 박수를 쳤다. 정씨는 객석을 바라보며 '일어서라'는 손짓을 보내는가 하면,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를 등 뒤에 둔 채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기도 했다.
이날 공연은 쓰디쓴 패배마저 서로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또 하나의 축제가 되고 있었다. "세계 무대에서 우리의 위상은 또 한 단계 올라섰다"는 '마에스트로 정'의 말은 일본 대표팀의 일부 '속좁은' 발언과도 대조를 이뤘다. 한국은 우리가 알고 있던 모습보다 훨씬 더 성장했다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김성현 문화부 danp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