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을 부수고, 피아노 건반을 밀쳐 넘어뜨리면서, 우리는 고(故) 백남준의 혼을 고향 땅으로 불러왔고, 그를 다시 떠나 보냈다. 18일 오후 5시50분 서울 봉은사. 1월 29일 세상을 떠난 백남준의 49재가 문화인과 일반인 10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야외추모행사로 치러졌다.
뉴욕 백남준 스튜디오가 주관한 이 행사는 무속인 이비나씨의 작두타기로 막을 올렸다. 어두워지면서 찬바람이 거세졌지만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이 모여들었다. 하이라이트는 일반인 100명이 재연한 '바이올린을 위한 독주(One for violin)' 퍼포먼스였다. 1962년 백남준이 했던 유명한 퍼포먼스로, 바이올린을 천천히 머리 위로 들어올린 뒤 갑자기 테이블 위로 내리쳐 깨버리는 것이었다. 이날 조문객 중 무작위로 뽑힌 100명은 주최측이 준비한 바이올린을 하나씩 나누어 가졌다. 먼저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수석큐레이터인 존 핸하르트 등이 시범을 보이고, 이어 100명이 일제히 바이올린을 높이 들어 내리쳤다. '고상한 악기'가 깨지면서 나는 소리,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딱 '백남준 표' 즉흥 예술작품이었다. 노혜경(54·용인시)씨는 땅에 떨어진 바이올린 조각을 주우며 "기념으로 집에 갖다 두고 싶다. 말로만 듣던 백남준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 것 같다"고 말했다. 변상수(44·양주시)씨는 "초등학교 5학년 딸에게 백남준이라는 훌륭한 한국 예술가가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왔다"고 말했다.
마지막 피아노 퍼포먼스에선 추모객 1000명이 촛불을 들고 피아노 건반 위에 촛농을 떨어뜨린 뒤 건반을 마음대로 두드렸다. 마지막에 몇 사람이 피아노를 밀쳐 넘어뜨렸고, 나머지 사람들은 촛불로 하얀 탑을 둘러쌌다. 백남준의 대표작 ‘다다익선’(국립현대미술관 소재)을 본떠 천으로 만든 탑이 가라앉으면서 행사는 끝났다. 일부 시민들은 이후 법왕루에 설치된 백남준의 마지막 작품 ‘엄마’를 감상하고 그의 유골함 앞에서 분향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