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뷰티’로 2000년 아카데미상을 휩쓴 영국 감독 샘 멘데스는 이름난 연극 연출가였다. 그가 1993년 런던 소극장에 뮤지컬 ‘캬바레’를 올렸다. 1930년대 베를린의 싸구려 나이트클럽을 무대로 나치 치하의 공포를 그린 사회극이다. 유태인 가게에 벽돌이 날아들고 나치 깃발이 펄럭이는 무대 뒤편으로 유태인들이 끌려간다. 마지막엔 “세상은 아름답다”고 노래하던 클럽 사회자마저 유태인 표식 노란별을 달고 수용소로 사라진다.

▶‘쉰들러 리스트’ ‘인생은 아름다워’ ‘피아니스트’…. 수용소의 참상을 다룬 영화도 많다. 극한상황에 맞닥뜨린 인간의 모습과 그 시련을 넘는 인간애가 있기 때문이다. 유태계 프랑스 감독 클로드 란츠만은 1985년 유태인 수용소 생존자들의 증언만으로 9시간 30분짜리 다큐멘터리 ‘쇼아’를 만들었다. 생존자들은 자기 힘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가스실의 절망과 공포를 털어놓았다.

▶북한 정치범수용소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 ‘요덕스토리’가 그제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개막했다. 함남 요덕수용소는 정치범 2만명이 옥수수 한 그릇, 소금 한 숟갈로 하루 14시간 중노동을 견디고, 탈출하다 잡히면 돌팔매질로 처형된다는 곳이다. 4년 전부터 ‘요덕스토리’를 추진한 탈북자 정성산 감독에겐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이 잇따랐다. 북한 눈치를 보는 정부 관계자들의 압력과 그에 따른 투자자들의 투자 철회로 애를 먹었다.

▶후원자들의 성금으로 결국 무대에 오른 ‘요덕스토리’엔 돈이 부족해 고전한 흔적이 뚜렷했다. 장면 전환 때는 배우들이 직접 소도구를 날랐고 수용소 벽은 위태롭게 흔들거렸다. 배우들 목소리는 음악에 묻혀 웅웅거렸다. 그러나 관객은 눈앞에 펼쳐지는 고문과 성폭행, 총살에 몸을 뒤척였다. 아들이 살아남으려고 아버지에게 채찍을 휘두르고, 감자를 훔쳐먹었다며 아이 손목을 작두로 자르는 대목에선 숨이 멎었다.

▶“중국에서 처음 만났을 때/ 얼마나 울었던지/ 살아서 언제 또 만날까.” 남쪽의 동생을 만난 죄로 끌려온 중년 사내의 노래가 울려 퍼지자 이쪽 저쪽에서 훌쩍였다. 주제곡 ‘촛불 같은 생명’에서 수용소 사람들은 합창했다. “거기 누구 있다면/ 이 비명소리 듣고 있는지/ 거기 누구 있다면/ 제발 우릴 구해 주세요.” 누가 이들의 입을 막고 이들에 쏠리는 눈길을 돌리려 기를 쓰는가. ‘요덕스토리’는 수용소 이름을 딴 주인공 아들 요덕의 외침으로 끝난다. “요덕이 잊으면 안 돼요.”

(김기철 논설위원 kichu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