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을 뛰어넘는 기업간 인수·합병(M&A)이 사상 최고치에 육박하는 가운데 세계 각국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경제적 국수주의(economic nationalism)’ 현상이 득세하고 있다. 이에 따라 1990년대 초 이후 세계 경제와 정치·문화·사회 변화의 견인차로 작동해온 ‘세계화’가 중대 갈림길에 섰다는 경고음이 나오고 있다.
◆미국·EU 등 선진국이 '국수주의'깃발 높여
흥미로운 것은 작년 하반기부터 본격화된 경제적 국수주의의 '진원지'는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들이라는 점. 급속한 자본 축적에 성공한 신흥국가 기업들이 M&A를 통해 선진국의 아성에 도전장을 내미는 데 대해 선진국들은 경제·안보와 자국민 고용 등을 명분으로 방어하는 형국이다.
올 들어서만도 아랍에미리트(UAE)의 국영기업인 두바이포트월드(DPW)가 미국 항만권 인수를 시도했다가 좌절됐다. 인도계 기업인 미탈스틸(Mittal Steel)은 프랑스와 룩셈부르그 철강회사인 아셀로(Arcelor)에 대한 적대적 인수를 선언했다가 사실상 무산됐다. 지난해는 중국 국영기업인 중국해양석유(CNOOC)가 미국 에너지기업 유노컬 인수를 추진했다가 미국 의회와 언론의 견제로 실패했다.
이외에도 한국에서는 기업 사냥꾼 '칼 아이칸'의 KT&G에 대한 공개 매수 시도가 여러 가지 논란으로 난항을 겪고 있다. 최근 집권한 볼리비아 좌파 정부는 민영화 후 외국인들이 경영해온 주요 기업들에 대한 재(再)국유화를 선언, 반(反)세계화 열기가 증폭되고 있다.
◆선진국 근로자의 불안감이 반세계화 '뿌리'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반세계화현상 확산과 관련, "테러리즘에 따른 외국인 공포증이 아니라 선진국 노동자들이 값싼 수입품과 저임금 이민 노동자 유입으로 생계 위협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고 13일 분석했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세계화 흐름을 파괴해 이미 상당 부분 상호 의존적이 된 세계 경제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점. 최근 10여년 동안 세계화 진행으로 상품·서비스 거래는 물론 기업 자체 매매가 급증했는데 이런 기류가 꺾일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국제 차원의 기업 M&A는 9000억달러(약 900조원)에 달해 1999~2000년을 제외하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찰리 맥거비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유럽 각국의 경제 국수주의는 유럽 통합과 단일 시장화라는 시대 조류에서 볼 때 지극히 비이성적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국내 투자와 소비를 위해 매주 최소 100억달러의 신규 자금 유입이 필수적인 미국 경제가 큰 위험에 처해 세계 경제에 부정적 파장이 확산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라구람 라잔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내 경제 국수주의 발호로 외국 자본의 미국 유입이 감소하면 자금 유입 촉진을 위한 금리 인상이 불가피해 세계 경제에 연쇄 충격이 가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과제는 반세계화와 애국주의 구호를 정치인들이 국내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할 가능성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誌) 최신호는 이와 관련, "최근의 반세계화현상은 구질서의 마지막 저항인 측면이 강하지만 각국이 정치적 목적으로 이를 남용할 경우, 민족주의 분출로 1914년의 1차 세계대전 발발과 같은 참사를 초래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홍콩=송의달특파원 edsong@chosun.com)